무너져 내리다

2021년 6월 9일. 광주 학동 재개발 구역에서 철거 중이던 학산빌딩이 무너져 내렸다. 멈춰 있던 운림54번 시내버스도 무너져 내렸다. 희생자 9명, 부상자 8명. 그들과 가족의 삶도 무너져 내렸다.

작년 3주기 추모식에 앞서 무너져 내린 운림54번 버스를 봤다.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 각화정수장 컨테이너 안에 보관돼 있었고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고 한다.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는 치워지고, 중단된 지 1년 5개월여 만에 철거 공사가 재개돼 ‘광주를 넘어 서울 강남과 비견되는’ ‘현대 노블시티’ 분양을 앞두고 있는 지금도 운림54번 버스는 창고 안에 갇혀 있는 사정은 간단치가 않다.

참사 4년을 맞이하는 추모식.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3주기에 비해 합창단이 들어갈 정도로 분향소가 커졌고, 같은 장소인데도 추모식 장소 표기가 ‘광주 동구청 주차장’에서 ‘광주 동구청 광장’으로 바뀐 정도.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일 아닐 텐데 덕분에 작년과 올해 사진도 비슷하다.  

2021년 학동4구역 재개발 조합의 연말 총회에 상정된 7개 안건 중 제3호 안건은 ‘붕괴사고 추모 상징물 조성 여부에 관한 의결의 건’이었다. 찬성 14.0%, 반대 75.2%, 기권 8.8%. 반대가 압도적이었다. 한겨레 기사(2023년 6월 10일자)에 따르면 ‘재개발사업 진행을 위해 부득이하게 공간을 설치해야 할 경우’란 단서를 달아 ‘적절한 위치’도 추가로 물었더니, 조합원 64.0%가 참사 현장에서 차로 30여 분 떨어진 제3의 장소를 지지했다고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엔 강남 최고급 주상복합 아크로비스타가 세워졌고 참사를 기리는 위령탑은 엉뚱한 양재동 매헌시민의숲 구석에 세워졌다. 2.18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를 기리는 추모공원은 이름도 갖지 못한 채 참사 현장에서 차로 40여 분 떨어진 팔공산 자락에 만들어졌다.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참사의 추모 공간은 26년 만에야 참사 현장에 세워지게 된다. 대한민국은 변한 것이 없다.

컨테이너 안 운림54번 버스는 지금도 삭아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4년이 지나도록 진심어린 사죄도 못 받고 추모 공간도 마련하지 못한, ‘추모식 외엔 이뤄진 약속은 거의 없다’는 유족과 부상자 가족들 마음도 여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정의가 아니라 망각이 드러났다’는 유족 대표의 말이 너무나 적절해서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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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지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진·글 정택용

일하는 사람들의 땀과 생태를 위협하는 인간의 탐욕에 관심이 많은 사진가.

대추리나 제주 강정, 밀양, 용산과 더불어 숱한 노동현장에서 이 나라엔 대접 받는 1등 국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의문을 품고 사진을 찍는다.

2010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5일 헌정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를 냈고,

2014년 ’밀양구술사프로젝트팀'이 쓴 『밀양을 살다』속 밀양 주민 16명의 사진을 찍었다.

2016년 고공농성과 한뎃잠을 담은 사진집 『외박』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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