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엿본 30년

한쪽 벽만 남기고 무너져내려 처참한 건물 사진. 붕괴 보름 만에 구조된 생존자 뉴스 보도. 오는 6월 29일이면 30년을 맞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에 대한 기억은 오랫동안 이 두 가지가 전부였다. 재난참사피해자연대를 통해 남은 가족들을 만나기 전까진.

30년이라는 시간은 그 일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의 기억을 지워버리기엔 넘치는 시간이었지만 유족들의 눈물을 멈추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시간. 잃어버린 딸 또래들을 보는 게 힘들어 젊은 사람이 없는 춘천의 산자락으로 이주한 유족의 집 출입문과 창문은 앞이 아닌 옆으로 나 있었다. 집 앞으로 보이는 강물조차 지인들이 걱정하던 그런 시절이 얼마나 많은 유가족들의 삶에 쌓여 30년이 된 것일까. 희생자 502명. 가족을 두세 명으로만 잡아도 천 단위가 훨씬 넘어가는데 그들 각각의 30년을 헤아리자니 마냥 아득해진다.

참사 현장이 아닌 양재동 시민의 숲 한켠에 세워진 위령탑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최근. 바람 부는 날이면 청소 도구를 챙겨 위령탑을 청소하는 미수습자의 어머니. 마음을 달래는 일이기도 하지만 삼풍 위령탑이 지저분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흉 볼까봐 그게 싫다. 따가운 시선, 상처 주는 말의 30년이 그 속에 담겨 있다. 

나온 김에 노을공원에도 가보자는 말에 선뜻 응한 그 마음을 물어보진 않았다. 번거로운 이동일 것 같아 걱정했는데, 그래서 가는 길에 간단히 술과 과일을 사가려고 했더니 집에 들러 정성스럽게 싸서 다시 길을 나서는 걸 보며 짐작만 할 뿐이다.

노을공원은 난초와 지초로 아름다웠던 섬, 난지도였다.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서울시민의 쓰레기 매립지로 쓰였고 2002년 월드컵이 열리던 해 노을공원이 됐다. 그 사이에 무너진 삼풍백화점의 폐기물과 참사 현장에서 걷어낸 잔해 대부분이 이곳에 버려졌다. 사라진 가족의 일부라도 찾아보려고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감시하던 곳이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는’ 공원이 돼 캠핑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지나쳐 너른 잔디밭 한가운데에 조촐한 상을 차리고 사라진 딸을 그려본다. 낯선 풍경이다. 캠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제를 올리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한 모습이다. 노을공원엔 이런 내용을 알 수 있는 어떤 표지판도 없다.

참사 현장을 한참 벗어나 세워진 위령탑, 실종자가 섞여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잔해의 매립. 30년이 지난 지금은 이 정도의 일처리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믿는다. 이런 믿음도 그 세월을 겪어온 피해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재난피해자의 권리를 찾는 일이 새삼 중요하게 다가온다. 추모하고 기억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그 권리를 훼손당한 채 견뎌온 이들의 30년을 곱씹어 본다.

기획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지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진·글 정택용

일하는 사람들의 땀과 생태를 위협하는 인간의 탐욕에 관심이 많은 사진가.

대추리나 제주 강정, 밀양, 용산과 더불어 숱한 노동현장에서 이 나라엔 대접 받는 1등 국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의문을 품고 사진을 찍는다.

2010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5일 헌정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를 냈고,

2014년 ’밀양구술사프로젝트팀'이 쓴 『밀양을 살다』속 밀양 주민 16명의 사진을 찍었다.

2016년 고공농성과 한뎃잠을 담은 사진집 『외박』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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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피해자권리센터'는 사진과 글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재난과 재난피해자의 흔적, 삶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재난피해자의 권리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기억하며, 재난피해자 곁에 머무는 작은 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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