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산불에 잿더미가 된 안동의 어느 마을. 높은 곳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다가 오토바이를 탄 우편배달부가 불에 탄 집들 사이를 다니며 우편물을 배달하는 모습을 봤다. 아무도 없을 것이 분명한데도 그는 열심히 할 일을 했다. 문득 4,000여 건의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아 384,912년의 징역형을 구형받은 스페인의 우편배달부 이야기가 떠올랐다. 폐허가 된 집들을 돌던 우편배달부를 보며 불합리한 행정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스치고 지나갔지만, 소식을 전하는 일은 참으로 엄중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더 크게 든 장면이었다.

신분증도 챙기지 못하고 급히 피해 나온 집은 새카맣게 타 남은 것이 없지만 다행히 살아남은 동물들에게 날마다 밥소식은 전해야 하는 할머니. 삶과 직결된 소식이라 더없이 엄중하다. 멀리서 온 손님에게 물 한 그릇 대접하지 못하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하는 할머니를 마치 전쟁터에 홀로 남기고 오는 것 같아 돌아서기도 힘들다.

해마다 봄소식을 전하던 식물들. 마당에서, 담벼락에서 불을 맞아 꽃봉오리가 피기도 전에 타버린 채로 여기저기 남아 있다. 목련도 철쭉도 사과나무도 제 색을 잃고 검은색 하나가 됐다. 주민들은 지금 봄소식을 기다리진 않는다. 만나는 주민들의 이야기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비현실적인 행정 처리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어차피 집으로서의 구실을 못하는데 전소냐 반소냐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게 됐다는 주민의 이야기는 씁쓸하다. 봄소식보다 실질적인 보상 소식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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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지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진·글 정택용

일하는 사람들의 땀과 생태를 위협하는 인간의 탐욕에 관심이 많은 사진가.

대추리나 제주 강정, 밀양, 용산과 더불어 숱한 노동현장에서 이 나라엔 대접 받는 1등 국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의문을 품고 사진을 찍는다.

2010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5일 헌정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를 냈고,

2014년 ’밀양구술사프로젝트팀'이 쓴 『밀양을 살다』속 밀양 주민 16명의 사진을 찍었다.

2016년 고공농성과 한뎃잠을 담은 사진집 『외박』을 냈다.

이달의 사진

'재난피해자권리센터'는 사진과 글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재난과 재난피해자의 흔적, 삶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재난피해자의 권리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기억하며, 재난피해자 곁에 머무는 작은 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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