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가 된 방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1년 정도 지난 뒤. 사진을 찍는 이들이 모여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 학생들의 방을 나눠서 찍은 적이 있다. 반과 이름밖에 모르는 학생의 방을 처음 찍으러 간 날의 무거움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겪어보지 못했다. 발걸음도 마음도 집 안의 공기까지도 너무나 무거웠고, 작은 소리라도 내면 안될 것 같은 마음에 긴장 속에서 빈 방을 찍었다. 사람이 없어 빈 방이라고 할 수도 있었고, 물건이 없어 빈 방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20년을 채 살지 못하고 떠난 사람이 가졌던 것은 생각보다 적었다. 1년이 넘었으니 물건을 어느 정도 정리한 집도 있었고 아예 방을 없애고 기억할 만한 물건들을 한쪽 공간에만 모아둔 집도 있었다. 그럼에도 물건이 적어서 잡동사니, 사진, 옷가지 등 남아 있는 것 거의 전부를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찍을 수 있었다. 수가 적은 것이 기록하는 처지에서는 수월했지만 짧은 인생을 증명하는 것 같아 슬픈 일이었다.

2024년 12월 29일. 무안공항에 착륙하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불시착하며 폭발했다.

179명이 희생됐다. 179명에는 얼마나 많은 연결들이 있을 것인가. 세월호 때의 기억으로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의 빈 방을 기록하기로 하고 일단 가능한 가족을 찾아봤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협의회의 김성철 추모사업부 상임이사와 박인욱 이사. 김성철 이사는 참사로 아내와 딸을, 박인욱 이사는 아내, 딸, 사위, 두 손주를 잃었다.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세월호 학생들의 방을 찍을 때만큼의 무거움은 없었다. 그러나 먼저 김성철 이사의 집, 딸의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서부터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진을 찍으러 갔던 때는 사고 지역 전면 재수색이 시작된 4월이었다. 참사가 일어난 지 17일째인 지난해 1월 15일 국토교통부는 “잔해 수습 99% 완료”라고 발표했다. 그 말이 무색하게도 올해 4월엔 날마다 유해 추정물이 발견됐고 수색 현장을 찾아가 찍은 이틀 동안에만 300여 점이 발견된 때였다. 참사 뒤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떠난 이들이 남긴 물건을 정리할 여유가 없었다. 출국하던 때, 생활하던 모습 거의 그대로 물건이 제자리에 남아 있었다.

남긴 물건의 양이나 종류도 비교할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는 남긴 물건이 적어서 슬펐지만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는 남긴 물건이 많아서 슬펐다. 평생토록 이룬 것과 이루고 있는 것이 평생토록 모은 것과 모으고 있는 물건들 속에서 보였다. 학생이라면 쓰던 방 정도면 그의 인생이 충분히 담겨 있었을 텐데, 성인, 인생 중반을 넘긴 희생자라면 방이 아니라 집 전체가 그의 인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특히 박인욱 이사의 집은 오롯이 아내의 손길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평생 가꿔 온 공간과 물건을 다시 돌보고 만져볼 틈도 없이 떠났음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됐고, 누가 책임질 것인가. 가족들은 아직도 그 답을 모르고 있다.

그래도 끝까지 그 답을 찾기 위해 두 이사를 포함한 유가족들은 무안공항에 방을 하나씩 더 마련했다. ‘재난 구호 쉘터’라고 적혀 있지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때까지 물러서지 않을 각오로 살고 있는 방이다. 비록 한 철 옷가지와 파스, 갖가지 약으로 가득한 공간이지만 가족이 떠난 가장 가까운 곳에 마련한 진지다. 4월 방문했을 때 발견된 유해 추정물이 600여 점이었는데 9월 다시 찾았을 때는 1,700여 점이 넘어 있었다. 아무 것도 찾지 못한 날이 드물었다. ‘99%’는 도대체 무엇이었나. 참사가 일어난 지 21개월이 지났는데도 땅을 파헤쳐 체로 거르며 가족의 흔적을 찾던 곳에서 추석 차례를 지내야 할 상황이다. 끔찍한 일이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살던 집의 물건도, 무안공항의 방도 정리할 수 없고 비울 수 없다.

깊디깊은 고민 없이 희생자의 방을 찍으러 갔다가 누군가의 평생이 담긴 흔적을 겁도 없이 찍으러 간 것이었다는 반성으로 돌아왔지만, 2주기가 되기 전에 유가족들이 합당한 결과를 얻어 진지가 된 방을 정리하는 모습을 찍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기획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지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진·글 정택용

일하는 사람들의 땀과 생태를 위협하는 인간의 탐욕에 관심이 많은 사진가.

대추리나 제주 강정, 밀양, 용산과 더불어 숱한 노동현장에서 이 나라엔 대접 받는 1등 국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의문을 품고 사진을 찍는다.

2010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5일 헌정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를 냈고,

2014년 ’밀양구술사프로젝트팀'이 쓴 『밀양을 살다』속 밀양 주민 16명의 사진을 찍었다.

2016년 고공농성과 한뎃잠을 담은 사진집 『외박』을 냈다.

이달의 사진

'재난피해자권리센터'는 사진과 글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재난과 재난피해자의 흔적, 삶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재난피해자의 권리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기억하며, 재난피해자 곁에 머무는 작은 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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