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다, 피우다

경북 산불피해 지역을 1년 만에 다시 찾아갔다. 안동, 의성, 영덕. 바뀐 곳도 있었고 별반 다르지 않은 곳도 있었다. 사라진 곳도 있었고 새로운 것이 들어선 곳도 있었다.

불을 맞은 나무들을 잘라냈던 영덕 산자락의 사과나무밭. 원래 키우던 나무들은 몇 그루 남지 않았지만 듬성듬성 새 묘목을 심었다. 새싹이 돋고 분홍색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작년 농부들로부터 묘목을 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새로 심으면 3~5년은 지나야 사과를 얻을 수 있으니 그때까지 버티는 일이 걱정이라는 말들을 들었다. 그래도 새로 심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안동 신흥리에서 폐허가 된 집들 사이로 우편물을 배달하던 우체부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때 사진을 뒤져보니 그가 신흥리에 배달하던 시간은 오전 10시 30분. 이번에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조금 일찍 신흥리에 도착해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덧 10시 30분. 우체국 오토바이가 나타났다. 그날 우편물을 받은 집은 단 한 집이었지만 똑같은 시간에 여전히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바다를 만나서야 멈춘 불 때문에 타버린 영덕 바닷가 나무들이 모조리 베어졌다. 나무가 없는 풍경이 이리도 삭막한지 새삼 느꼈다. 그래도 불탄 자리에서, 베어진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움트고 있었다. 초록이 먹빛을 밀어내고 있었다.

묵묵히, 꾸준히 살아가고들 있다.

언덕길 윗집은 불에 타 무너져내렸고 아랫집은 멀쩡해 보였다. 이번에 보니 윗집은 새집이 거의 지어졌다. 아랫집 할아버지한테 윗집은 다 탔는데 피해가 많이 없었냐고 묻자 앞은 멀쩡해도 언덕에 맞닿은 집 뒤쪽은 유리와 패널이 다 녹아내렸다며 전소되지 않으면 보상이라고 별 거 없다고 한다. 1년 전과 다를 게 없다. 4월 23일 의성 산불피해지역 주민들이 청와대 앞까지 와서 피해 회복을 위한 시스템 개편과 실질적인 피해 회복부터 지원하라고 촉구한 이유일 것이다. 자연도 사람도 할 일을 하고 있는데 국가, 정부는 지나치게 더디다.

불탄 마을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한테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바로 앞 새집을 가리킨다. 작년에 완전히 불타버렸다고 한다. 마음은 좀 추스르셨냐고 쓸모없는 질문을 건넸다. “이제는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거지 뭐”라고 말하며 마침 도착한 버스를 타러 느릿느릿 가버리신다.

새 생명이 피고 새 생명을 피우는 것.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래서 버틴다.

기획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지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진·글 정택용

일하는 사람들의 땀과 생태를 위협하는 인간의 탐욕에 관심이 많은 사진가.

대추리나 제주 강정, 밀양, 용산과 더불어 숱한 노동현장에서 이 나라엔 대접 받는 1등 국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의문을 품고 사진을 찍는다.

2010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5일 헌정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를 냈고,

2014년 ’밀양구술사프로젝트팀'이 쓴 『밀양을 살다』속 밀양 주민 16명의 사진을 찍었다.

2016년 고공농성과 한뎃잠을 담은 사진집 『외박』을 냈다.

이달의 사진

'재난피해자권리센터'는 사진과 글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재난과 재난피해자의 흔적, 삶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재난피해자의 권리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기억하며, 재난피해자 곁에 머무는 작은 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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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사진」, 정택용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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