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강문화산업대학교 <참사와 서사> 강의는 이번에도 잊을 수 없는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광주학동참사 유가족이신 김지영님, 황옥철님 부부가 강의를 찾아주셨습니다.
강의는 두 학생들의 발표로 시작되었습니다. 광주학동참사의 원인과 사건 개요를 다룬 발표 속에서 반복되는 키워드는 "무시된 법과 원칙", "부실한 해체 계획", 그리고 "책임의 회피"였습니다. 이를 통해 광주학동참사는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 속에 벌어진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김지영, 황옥철님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부부는 참사 이후 ‘잊히지 않기 위해’, 그리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애써온 분들입니다.
특히, 이번 수업에는 부부의 초등학생 자녀도 함께 자리해 주었습니다. 평소 부모님의 활동을 옆에서 지켜보던 자녀분은 “엄마와 아빠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들을 수 있는 기회였을 겁니다.

김지영님은 참사 이후 가장 변한 점으로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고백했습니다. “만족스러운 하루는 이제 나에게 없다”고 말한 김지영님은 최근에 쇼펜하우어의 책에서 ‘가장 힘들 때는 일상을 지켜라’는 문장을 읽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전엔 인식조차 못했어요. 내 일상이 무너졌다는 걸요. 그런데 파도처럼 밀려오는 슬픔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애도의 방법으로 잊혀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계 안에 동생의 사진을 넣고, 의식적으로 동생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본다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슬픔의 파도가 나에게 밀려오게 하자. 그 일상에 먹히지 않기 위해서. 어차피 받아야 할 슬픔이라면, 나를 단단하게 하는 슬픔이 되게 하자.”

황옥철님은 광주학동참사 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로서 참사 이후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주 자택인 경기도에서 광주를 오가며 싸워오셨습니다. 협상의 과정은 고되고, 약속은 번복 되었으며, 그 와중에 건강까지 크게 상하셨다고 합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협상을 끝내기 전까지는 납골당에도 가지 못한다”고 말할 만큼,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가려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두 분은 또 다른 참사 유가족들과의 만남에서 위로와 연대의 힘을 느꼈다고 합니다. 삼풍백화점 유가족과의 만남을 이야기 하며 “우리는 30년이 걸렸어요”라고 말해주던 순간, “지금 내가 조바심을 내고 있지만, 지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뤄지겠구나”라는 위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강의를 위해 함께해 주신 김지영님, 황옥철님 부부와 자녀분에게 이 시간이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기억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참사와 서사> 강의는 이번에도 잊을 수 없는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광주학동참사 유가족이신 김지영님, 황옥철님 부부가 강의를 찾아주셨습니다.
강의는 두 학생들의 발표로 시작되었습니다. 광주학동참사의 원인과 사건 개요를 다룬 발표 속에서 반복되는 키워드는 "무시된 법과 원칙", "부실한 해체 계획", 그리고 "책임의 회피"였습니다. 이를 통해 광주학동참사는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 속에 벌어진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김지영, 황옥철님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부부는 참사 이후 ‘잊히지 않기 위해’, 그리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애써온 분들입니다.
특히, 이번 수업에는 부부의 초등학생 자녀도 함께 자리해 주었습니다. 평소 부모님의 활동을 옆에서 지켜보던 자녀분은 “엄마와 아빠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들을 수 있는 기회였을 겁니다.
김지영님은 참사 이후 가장 변한 점으로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고백했습니다. “만족스러운 하루는 이제 나에게 없다”고 말한 김지영님은 최근에 쇼펜하우어의 책에서 ‘가장 힘들 때는 일상을 지켜라’는 문장을 읽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전엔 인식조차 못했어요. 내 일상이 무너졌다는 걸요. 그런데 파도처럼 밀려오는 슬픔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애도의 방법으로 잊혀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계 안에 동생의 사진을 넣고, 의식적으로 동생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본다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슬픔의 파도가 나에게 밀려오게 하자. 그 일상에 먹히지 않기 위해서. 어차피 받아야 할 슬픔이라면, 나를 단단하게 하는 슬픔이 되게 하자.”
황옥철님은 광주학동참사 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로서 참사 이후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주 자택인 경기도에서 광주를 오가며 싸워오셨습니다. 협상의 과정은 고되고, 약속은 번복 되었으며, 그 와중에 건강까지 크게 상하셨다고 합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협상을 끝내기 전까지는 납골당에도 가지 못한다”고 말할 만큼,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가려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두 분은 또 다른 참사 유가족들과의 만남에서 위로와 연대의 힘을 느꼈다고 합니다. 삼풍백화점 유가족과의 만남을 이야기 하며 “우리는 30년이 걸렸어요”라고 말해주던 순간, “지금 내가 조바심을 내고 있지만, 지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뤄지겠구나”라는 위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강의를 위해 함께해 주신 김지영님, 황옥철님 부부와 자녀분에게 이 시간이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기억이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