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떤 일까지 해보셨나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콘텐츠 비평 수업에 특별한 손님이 왔습니다.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이상은님의 가족 강선이, 이성환님 부부가 초대손님이 되어 학생들을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이유는, 작년 재난피해자권리센터와 청강문화산업대학교가 함께 기획한 수업 <참사와 서사>가 올해에도 새로운 만남으로 채워져 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10.29이태원참사의 개요를 소개하는 학생들의 발표에 이어, 두 사람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단 한 번도 정부의 브리핑을 받지 못했다거나 누가 유가족인지 알 수 없어 직접 서로를 찾아야 했다는 대답이 오갔습니다. 책임자인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를 원하지만, 그 당연한 말을 결코 들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에는 많은 학생들이 슬픔인지 화인지 모를 한숨을 ‘하-’하고 내쉬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어려움에 머무르기만 했다면 이 자리에 나올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했을까요? 학생들은 어떻게 그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었느냐 묻습니다.
“종교가 두 분에게 영향을 주었을까요? 종교의 도움을 받으신 부분이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상은 엄마 강선이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 우리 이태원 유가족 중에는 참사 이후 종교 생활을 멀리하게 된 사람도 있고, 저희처럼 참사 이후 종교 생활을 가까이하게 된 경우도 있어요. 저희는 얼마 전에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상은 아빠 이성환 님 이런 말을 합니다. “사실 저는 불교에 가까운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매일 아침 상은이를 위해 불경을 읽습니다.” 성당을 다닌다고 했는데, 무슨 소리일까? 의아한 표정의 학생들에게 상은 엄마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 1주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되어서 세월호 어머니들을 만나러 갔었어요. 세월호 어머니 중에 연극이나 합창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노래를 하고 연극을 할 수 있는지 물었어요. 전 도저히 안 될 것 같다고요. 그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 아이의 꿈이 가수였어요, 내 아이의 꿈이 연극을 하는 거였어요, 하고요. 그 말이 참 감명 깊었어요. 우리도 상은이의 버킷리스트를 대신할 수 없을까 생각했고, 상은이의 메모를 보게 됐어요.”
“상은이는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하는 것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어요. 저희는 상은이의 꿈을 대신해,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하고, 교리 수업을 들으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얼마 전 저희는 세례를 받았고 동시에 상은이의 꿈이었던 명동성당에서의 작은 결혼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의 버킷리스트를 대신 이루는 일. 그리고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의 종교 생활은 종교나 신앙심에 대한 학생의 질문으로부터 예상할 수 있는 답이 아니었기에 학생들은 크게 동요했습니다. 이후로도 열띤 질의 응답이 이어졌고, 수업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많은 재난피해자들이 ‘피해자다움’ 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위축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연극 무대에 오르고, 노래를 부르고, 성당에 가고, 갱신 결혼식을 올리는 것 모두 사랑하는 이의 삶을 잇는 애도와 사랑의 시간입니다. 이처럼 사랑과 애도의 모양은 다양합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떤 일까지 해보셨나요?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사랑과 애도의 일상이 언제나 오롯이 보장될 수 있기를 바라며, <참사와 서사> 첫 번째 수업참관기를 마칩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떤 일까지 해보셨나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콘텐츠 비평 수업에 특별한 손님이 왔습니다.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이상은님의 가족 강선이, 이성환님 부부가 초대손님이 되어 학생들을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이유는, 작년 재난피해자권리센터와 청강문화산업대학교가 함께 기획한 수업 <참사와 서사>가 올해에도 새로운 만남으로 채워져 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10.29이태원참사의 개요를 소개하는 학생들의 발표에 이어, 두 사람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단 한 번도 정부의 브리핑을 받지 못했다거나 누가 유가족인지 알 수 없어 직접 서로를 찾아야 했다는 대답이 오갔습니다. 책임자인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를 원하지만, 그 당연한 말을 결코 들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에는 많은 학생들이 슬픔인지 화인지 모를 한숨을 ‘하-’하고 내쉬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어려움에 머무르기만 했다면 이 자리에 나올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했을까요? 학생들은 어떻게 그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었느냐 묻습니다.
“종교가 두 분에게 영향을 주었을까요? 종교의 도움을 받으신 부분이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상은 엄마 강선이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 우리 이태원 유가족 중에는 참사 이후 종교 생활을 멀리하게 된 사람도 있고, 저희처럼 참사 이후 종교 생활을 가까이하게 된 경우도 있어요. 저희는 얼마 전에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상은 아빠 이성환 님 이런 말을 합니다. “사실 저는 불교에 가까운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매일 아침 상은이를 위해 불경을 읽습니다.” 성당을 다닌다고 했는데, 무슨 소리일까? 의아한 표정의 학생들에게 상은 엄마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 1주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되어서 세월호 어머니들을 만나러 갔었어요. 세월호 어머니 중에 연극이나 합창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노래를 하고 연극을 할 수 있는지 물었어요. 전 도저히 안 될 것 같다고요. 그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 아이의 꿈이 가수였어요, 내 아이의 꿈이 연극을 하는 거였어요, 하고요. 그 말이 참 감명 깊었어요. 우리도 상은이의 버킷리스트를 대신할 수 없을까 생각했고, 상은이의 메모를 보게 됐어요.”
“상은이는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하는 것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어요. 저희는 상은이의 꿈을 대신해,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하고, 교리 수업을 들으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얼마 전 저희는 세례를 받았고 동시에 상은이의 꿈이었던 명동성당에서의 작은 결혼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의 버킷리스트를 대신 이루는 일. 그리고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의 종교 생활은 종교나 신앙심에 대한 학생의 질문으로부터 예상할 수 있는 답이 아니었기에 학생들은 크게 동요했습니다. 이후로도 열띤 질의 응답이 이어졌고, 수업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많은 재난피해자들이 ‘피해자다움’ 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위축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연극 무대에 오르고, 노래를 부르고, 성당에 가고, 갱신 결혼식을 올리는 것 모두 사랑하는 이의 삶을 잇는 애도와 사랑의 시간입니다. 이처럼 사랑과 애도의 모양은 다양합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떤 일까지 해보셨나요?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사랑과 애도의 일상이 언제나 오롯이 보장될 수 있기를 바라며, <참사와 서사> 첫 번째 수업참관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