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의 주제는 <젠더와 재난피해자의 권리>였습니다. 오늘의 강사는 정원옥 문화사회연구소 대표이사님이십니다.
“비상계엄이 있었을 때 왜 재난문자가 오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왜 문자가 오지 않았을까요?” 이번 강의도 강사님의 알쏭달쏭 수수께끼로 시작합니다.
“법에 계엄은 재난으로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법의 규정 여부는 중요합니다.
그 관점에서 반추해보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서는 안전취약계층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 대상에서 여성은 제외돼있습니다. 인권적 관점을 지지하는 재난피해자 운동에서 제기한 <생명안전기본법>에도 젠더관점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기겠죠. 여성은 안전취약계층인가? 왜 재난을 젠더 관점으로 보아야 하는가?
재난불평등과 젠더불평등
(여성신문. 2014.04.15 “일본과 미국은 재난대책에 ‘성인지 관점’ 어떻게 반영했을까”)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7183
“지진이 아니라 건물이 사람을 죽인다”(존 머터 <재난불평등> 장상미 역, 2016, 52쪽)라는 겪언이 있습니다. 이는 재난은 동일해보이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더욱 가혹하고 불평등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빈곤한, 그래서 구매능력이 없는 비생산인구의 죽음은 거시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지요. 또한 자본이 있는 사람들은 재난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습니다. 재난의 페허에서 자본을 불리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관점으로 재난에 젠더 관점을 투영하면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학문적으로 엄밀한 것은 아니지만 경향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재난 몇 가지만 보더라도 성비로만 보면 여성 피해자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그럼에도 재난을 젠더관점으로 보려는 노력은 아직 더딥니다. 이러한 경향은 남성과는 또 다른 사회적 위치에서 재난을 당한 여성의 경험을 비가시화하거나 주변화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재난에서 여성의 피해에 대해 듣는 것은 재난을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함에도 아직 그 노력은 더딘 편이라는 것이지요.

재난의 과정 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재난 이후의 국면에서도 젠더 관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남성과 여성은 재난이후를 조금은 다르게 경험합니다.
일례로 코로나 19 이후에 가정폭력은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는 미국, 프랑스, 영국 등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한국의 경우는 코로나 위기를 일자리 상실, 실직, 돌봄 노동의 증가, 코로나 우울감 등으로 경험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이 고통을 온몸으로 경험한 것은 30대 여성으로 보이는데요, 관련 조사에 따르면 30대 기혼 여성이 다른 성별과 전 연령대에서 가장 큰 자살 충동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취학아동의 돌봄 등이 전가되면서 여성들의 피해가 더욱 컸다는 분석이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유엔에서도 젠더관점에서 재난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만들어진 재난관리정책에서 젠더관점은 아직 부재합니다. 관련 법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재난관리정책에서의 고려도 없습니다. 일본에서 한신대 지진 이후 재난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말하기 위한 방편으로 재해여성학이 대두되고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좀 아쉬운 대목이지요.
재해여성학의 원리를 한마디로 추리면, 여성은 재난을 통해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불평등이 재난을 통해 더욱 드러나고, 더욱 불평등해지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평상시와 재해시를 관통하는 불평등이 존재함을 사회적으로, 구조적으로 드러내며 공동체의 역량강화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오랜 재난의 역사를 갖고, 젠더적 관점에서의 연구에서 20년을 앞서 가고 있는 측면을 고려하면 일본의 재해여성학은 우리가 좀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불평등한 애도의 구조에서 평등한 애도는 어떻게 가능한가?
빈곤과 젠더가 갖는 재난에서의 불평등성을 잘 보여주는 게 바로 애도 불평등입니다. 재난에서도 애도는 사회적으로 애도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애도가 주어집니다. 그건 국가가 어떤 죽음은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음에 따른 것일 수도 있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구조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국내 사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입니다. 가습기살균제참사는 가해와 피해가 여성화됨에 따라 제대로 된 추모의 공간, 애도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지금도 그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가 제대로 애도하지 못할 때 그 사회는 집단적 우울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애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삶의 불안정성을 없애고, 사회적 불평등성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너무 뻔하지만 가장 중요한 전제이기도 하지요. 버틀러가 이야기했듯이, 죽었을 때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폐기될 수 있다는 인식, 즉 존엄을 빼앗기는 것이야말로 비가시적이지만 제도적 폭력의 한 형태이기에 여기에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체의 운동이 매우 중요합니다. 세월호참사는 재난이후를 젠더적 관점에서 새롭게 회복해 온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 노란리본극단, 4.16공방, 합창단이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또한 세월호 참사를 지지해온 주민들의 활동, 예를 들어 세월호 진상규명과 안전한 정읍을 위한 시민모임도 ‘이팝생명의 숲’을 꾸리고 활동해 온, 매우 젠더적 활동의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밀양송전탑 반대운동에서의 바느질 연대도 젠더적 실천의 하나입니다.
4강은 황필규 변호사님이 <국제인권법과 재난피해자의 권리>라는 주제로, 3월 4일(화)에 진행해주십니다.
3강의 주제는 <젠더와 재난피해자의 권리>였습니다. 오늘의 강사는 정원옥 문화사회연구소 대표이사님이십니다.
“비상계엄이 있었을 때 왜 재난문자가 오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왜 문자가 오지 않았을까요?” 이번 강의도 강사님의 알쏭달쏭 수수께끼로 시작합니다.
“법에 계엄은 재난으로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법의 규정 여부는 중요합니다.
그 관점에서 반추해보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서는 안전취약계층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 대상에서 여성은 제외돼있습니다. 인권적 관점을 지지하는 재난피해자 운동에서 제기한 <생명안전기본법>에도 젠더관점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기겠죠. 여성은 안전취약계층인가? 왜 재난을 젠더 관점으로 보아야 하는가?
재난불평등과 젠더불평등
(여성신문. 2014.04.15 “일본과 미국은 재난대책에 ‘성인지 관점’ 어떻게 반영했을까”)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7183
“지진이 아니라 건물이 사람을 죽인다”(존 머터 <재난불평등> 장상미 역, 2016, 52쪽)라는 겪언이 있습니다. 이는 재난은 동일해보이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더욱 가혹하고 불평등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빈곤한, 그래서 구매능력이 없는 비생산인구의 죽음은 거시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지요. 또한 자본이 있는 사람들은 재난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습니다. 재난의 페허에서 자본을 불리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관점으로 재난에 젠더 관점을 투영하면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학문적으로 엄밀한 것은 아니지만 경향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재난 몇 가지만 보더라도 성비로만 보면 여성 피해자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그럼에도 재난을 젠더관점으로 보려는 노력은 아직 더딥니다. 이러한 경향은 남성과는 또 다른 사회적 위치에서 재난을 당한 여성의 경험을 비가시화하거나 주변화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재난에서 여성의 피해에 대해 듣는 것은 재난을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함에도 아직 그 노력은 더딘 편이라는 것이지요.
재난의 과정 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재난 이후의 국면에서도 젠더 관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남성과 여성은 재난이후를 조금은 다르게 경험합니다.
일례로 코로나 19 이후에 가정폭력은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는 미국, 프랑스, 영국 등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한국의 경우는 코로나 위기를 일자리 상실, 실직, 돌봄 노동의 증가, 코로나 우울감 등으로 경험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이 고통을 온몸으로 경험한 것은 30대 여성으로 보이는데요, 관련 조사에 따르면 30대 기혼 여성이 다른 성별과 전 연령대에서 가장 큰 자살 충동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취학아동의 돌봄 등이 전가되면서 여성들의 피해가 더욱 컸다는 분석이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유엔에서도 젠더관점에서 재난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만들어진 재난관리정책에서 젠더관점은 아직 부재합니다. 관련 법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재난관리정책에서의 고려도 없습니다. 일본에서 한신대 지진 이후 재난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말하기 위한 방편으로 재해여성학이 대두되고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좀 아쉬운 대목이지요.
재해여성학의 원리를 한마디로 추리면, 여성은 재난을 통해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불평등이 재난을 통해 더욱 드러나고, 더욱 불평등해지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평상시와 재해시를 관통하는 불평등이 존재함을 사회적으로, 구조적으로 드러내며 공동체의 역량강화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오랜 재난의 역사를 갖고, 젠더적 관점에서의 연구에서 20년을 앞서 가고 있는 측면을 고려하면 일본의 재해여성학은 우리가 좀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불평등한 애도의 구조에서 평등한 애도는 어떻게 가능한가?
빈곤과 젠더가 갖는 재난에서의 불평등성을 잘 보여주는 게 바로 애도 불평등입니다. 재난에서도 애도는 사회적으로 애도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애도가 주어집니다. 그건 국가가 어떤 죽음은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음에 따른 것일 수도 있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구조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국내 사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입니다. 가습기살균제참사는 가해와 피해가 여성화됨에 따라 제대로 된 추모의 공간, 애도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지금도 그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가 제대로 애도하지 못할 때 그 사회는 집단적 우울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애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삶의 불안정성을 없애고, 사회적 불평등성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너무 뻔하지만 가장 중요한 전제이기도 하지요. 버틀러가 이야기했듯이, 죽었을 때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폐기될 수 있다는 인식, 즉 존엄을 빼앗기는 것이야말로 비가시적이지만 제도적 폭력의 한 형태이기에 여기에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체의 운동이 매우 중요합니다. 세월호참사는 재난이후를 젠더적 관점에서 새롭게 회복해 온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 노란리본극단, 4.16공방, 합창단이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또한 세월호 참사를 지지해온 주민들의 활동, 예를 들어 세월호 진상규명과 안전한 정읍을 위한 시민모임도 ‘이팝생명의 숲’을 꾸리고 활동해 온, 매우 젠더적 활동의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밀양송전탑 반대운동에서의 바느질 연대도 젠더적 실천의 하나입니다.
4강은 황필규 변호사님이 <국제인권법과 재난피해자의 권리>라는 주제로, 3월 4일(화)에 진행해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