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2024년 겨울. 무심코 켠 TV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강연 장면이 나왔다. 통상적인 의식이려니 하며 설거지를 마무리하려는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란 말이 느닷없이 후비며 들어왔다. 이어서 가슴 속은 파도를 만난 듯 크게 출렁이더니 이내 눈물로 먹먹해졌다.
두 달 전에 노벨문학상이 발표됐지만 12ㆍ3 계엄으로 세상이 시끄러워 노벨문학상 수상 감격도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예전의 나라면 상황이 어떻든 당장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며 정보를 모으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국어교사라는 의무감으로 노벨문학상을 모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흥분해서 설명했을 것이다. BTS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한강 작가만으로도 학생들에게 글로벌문학을 얘기하고 문학이 갖고있는 희망에 대해 도취된 채 막 강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 한빛이 떠난 이후로 나에게는 이런 감정이란 것이 아예 사라졌다. 매사 즐거울 것도 신날 일도 없다. 멋진 풍경을 보아도 가슴이 뛴다는 게 뭔지 잊어버렸다. 감흥이나 느낌이 아예 없다. 거기다 매사 훅~하고 한빛이 이어지니 가슴 한구석은 항상 서리다. 사람들을 만나도 이야기할 것이 없고 억지 공감하기도 애매하다보니 인간관계 역시 점점 불편해진다.
10년 전 한빛이 <채식주의자>를 읽고 있었다. “어? 한강 책이네. 좋으니? 나도 읽어야겠다”하니 “읽지 마세요. 내용이 좀 힘들어요. 엄마는 <올드보이> 영화 보시고도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에 한참 힘들어하셨잖아요” 했다. 소심하고 감정적으로 취약한 엄마에 대한 배려로 슬쩍 말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강의 노벨문학상이 한빛과 무슨 연관이 있다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렇게 또 불쑥 한빛을 불러온다.
서점에 갔다. 한빛 책꽂이에 없는 한강 소설들을 뒤적였지만 선뜻 책을 고르지 못했다.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더욱이 ‘고통, 죽음’ 등의 단어는 이제는 한빛과 연결되기에 일단 유예하게 된다. 솔직히 직면할 자신이 없다.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펴서 첫머리에 있는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을 읽었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하면서도 ‘나는 그저 밥을 먹는다.’에 한참을 머물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마치 밥 먹듯 반복된다는 사실을 진행형의 문장과 완료형의 문장을 포개놓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의 조짐이 지속되는 삶의 쓸쓸함(해설, 조연정)’을 매일 살고 있는 나를 보았다.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회복기의 노래」)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회상」) 마치 시인이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 같다.
사실 나는 시를 잘 모르고 시가 어렵다. 자세하게 풀어주는 소설이 더 편하다. 그럼에도 마음이 더 무거워지지 않으려고 이 시집을 선택했는데 뜻밖에 시들이 마음을 따듯하게 하고 언어 하나하나가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공감받고 있어 고마웠다.
고통과 마주하는 일을 피하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절망과 무기력에 빠질 생각도 없는 시인(화자)의 삶의 자세가 부러웠다. 한빛을 과거완료형으로만 이야기해야 하고 이제는 너무나 낯선 행복, 기쁨, 희망 등의 단어들,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불쑥 올라오는 상실감과 균열로 흔들리는 삶.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을 거부하면서도 슬픔 속에 방치된 삶이 가엾어 영리하게 살고자 애쓰려는 나에 대한 당황스러움. 시인의 말처럼 나는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언제까지? 아니 끝은 있는 걸까?

연리근(連理根)을 가진 나무에 대해 들었다. 두 그루 이상의 서로 다른 나무뿌리가 흙 속에서 엉겨 붙어 마치 하나의 뿌리처럼 자라나는 나무. 땅 위에서는 각자의 나무가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땅속 깊은 곳에서는 서로의 뿌리가 이어져 영양분을 나누고 함께 살아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결되어 서로를 살리는 것이다.
한빛과도 연리근(連理根)같이 살고 싶다. 비록 견디어내며 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그리움과 기억으로 연결되어 함께 살아가며 그 연결이 나를 살릴 것이라고 믿는다. 순간순간 불안하고 뿌옇던 삶은 「괜찮아」를 만나면서 시 속의 아이처럼 울음을 멈출 수 있었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그 속에서 투명하게 반짝이는 「파란 돌」을 건져 올리려는 욕망이 삶의 의지라는 것도 알았다.
상실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지만, 상실 이후의 삶을 새롭게 살아갈 수는 있었다. 고통의 현실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허공 속에서도 뿌리를 단단히 내리며, 나만의 속도로 다시 자라날 수 있었다. 이것이 한빛에 대한 애도이며 나를 위한 구원이 아닐까? 등지고 싶었던 운명이 다가와 말을 걸면 이제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으리라. 나로 인해 고통을 받은 운명을 어루만지며(「서시」) 나를 따듯하게 쓰다듬어주리라.

시집을 덮으며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 싶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하는 과정속에 머무르고 싶은 소망도 생겼다. 얼굴에 햇빛이 내리면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가만히 있고 싶다.(「회복기의 노래」) 그러나 이것 또한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리라. ‘너를 기억하는 우리가 있으니’ ‘너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한빛 추모조형물에 쓰여있는 것처럼 한빛과 연리근처럼 연결될 때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그 이어진 빛과 힘을 믿기에 오늘도 나는 나와 한빛에게 토닥인다.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라고.
📝 김혜영. tvN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PD님의 엄마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곁에서 아들의 삶을 이어가려 애쓰고 있다
📸사진 설명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사진1.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시집 표지
사진2. 연리근(連理根) (그림: 이선주, 표현예술테라피스트)
사진3. 고 이한빛PD 추모 조형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너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너를 기억하는 우리가 있으니’)
📚 이달의 책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책'은 재난참사피해자가 또 다른 재난참사피해자에게 건네는 책으로써의 위로이자, 읽고 쓰기를 혼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상실 이후를 함께 나누는 장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회복 불가능한 시간을 책으로 겪어내는 이들에게 이달의 책이 잠시라도 숨 쉴 구멍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2024년 겨울. 무심코 켠 TV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강연 장면이 나왔다. 통상적인 의식이려니 하며 설거지를 마무리하려는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란 말이 느닷없이 후비며 들어왔다. 이어서 가슴 속은 파도를 만난 듯 크게 출렁이더니 이내 눈물로 먹먹해졌다.
두 달 전에 노벨문학상이 발표됐지만 12ㆍ3 계엄으로 세상이 시끄러워 노벨문학상 수상 감격도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예전의 나라면 상황이 어떻든 당장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며 정보를 모으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국어교사라는 의무감으로 노벨문학상을 모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흥분해서 설명했을 것이다. BTS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한강 작가만으로도 학생들에게 글로벌문학을 얘기하고 문학이 갖고있는 희망에 대해 도취된 채 막 강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 한빛이 떠난 이후로 나에게는 이런 감정이란 것이 아예 사라졌다. 매사 즐거울 것도 신날 일도 없다. 멋진 풍경을 보아도 가슴이 뛴다는 게 뭔지 잊어버렸다. 감흥이나 느낌이 아예 없다. 거기다 매사 훅~하고 한빛이 이어지니 가슴 한구석은 항상 서리다. 사람들을 만나도 이야기할 것이 없고 억지 공감하기도 애매하다보니 인간관계 역시 점점 불편해진다.
10년 전 한빛이 <채식주의자>를 읽고 있었다. “어? 한강 책이네. 좋으니? 나도 읽어야겠다”하니 “읽지 마세요. 내용이 좀 힘들어요. 엄마는 <올드보이> 영화 보시고도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에 한참 힘들어하셨잖아요” 했다. 소심하고 감정적으로 취약한 엄마에 대한 배려로 슬쩍 말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강의 노벨문학상이 한빛과 무슨 연관이 있다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렇게 또 불쑥 한빛을 불러온다.
서점에 갔다. 한빛 책꽂이에 없는 한강 소설들을 뒤적였지만 선뜻 책을 고르지 못했다.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더욱이 ‘고통, 죽음’ 등의 단어는 이제는 한빛과 연결되기에 일단 유예하게 된다. 솔직히 직면할 자신이 없다.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펴서 첫머리에 있는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을 읽었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하면서도 ‘나는 그저 밥을 먹는다.’에 한참을 머물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마치 밥 먹듯 반복된다는 사실을 진행형의 문장과 완료형의 문장을 포개놓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의 조짐이 지속되는 삶의 쓸쓸함(해설, 조연정)’을 매일 살고 있는 나를 보았다.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회복기의 노래」)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회상」) 마치 시인이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 같다.
사실 나는 시를 잘 모르고 시가 어렵다. 자세하게 풀어주는 소설이 더 편하다. 그럼에도 마음이 더 무거워지지 않으려고 이 시집을 선택했는데 뜻밖에 시들이 마음을 따듯하게 하고 언어 하나하나가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공감받고 있어 고마웠다.
고통과 마주하는 일을 피하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절망과 무기력에 빠질 생각도 없는 시인(화자)의 삶의 자세가 부러웠다. 한빛을 과거완료형으로만 이야기해야 하고 이제는 너무나 낯선 행복, 기쁨, 희망 등의 단어들,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불쑥 올라오는 상실감과 균열로 흔들리는 삶.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을 거부하면서도 슬픔 속에 방치된 삶이 가엾어 영리하게 살고자 애쓰려는 나에 대한 당황스러움. 시인의 말처럼 나는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언제까지? 아니 끝은 있는 걸까?
연리근(連理根)을 가진 나무에 대해 들었다. 두 그루 이상의 서로 다른 나무뿌리가 흙 속에서 엉겨 붙어 마치 하나의 뿌리처럼 자라나는 나무. 땅 위에서는 각자의 나무가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땅속 깊은 곳에서는 서로의 뿌리가 이어져 영양분을 나누고 함께 살아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결되어 서로를 살리는 것이다.
한빛과도 연리근(連理根)같이 살고 싶다. 비록 견디어내며 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그리움과 기억으로 연결되어 함께 살아가며 그 연결이 나를 살릴 것이라고 믿는다. 순간순간 불안하고 뿌옇던 삶은 「괜찮아」를 만나면서 시 속의 아이처럼 울음을 멈출 수 있었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그 속에서 투명하게 반짝이는 「파란 돌」을 건져 올리려는 욕망이 삶의 의지라는 것도 알았다.
상실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지만, 상실 이후의 삶을 새롭게 살아갈 수는 있었다. 고통의 현실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허공 속에서도 뿌리를 단단히 내리며, 나만의 속도로 다시 자라날 수 있었다. 이것이 한빛에 대한 애도이며 나를 위한 구원이 아닐까? 등지고 싶었던 운명이 다가와 말을 걸면 이제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으리라. 나로 인해 고통을 받은 운명을 어루만지며(「서시」) 나를 따듯하게 쓰다듬어주리라.
시집을 덮으며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 싶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하는 과정속에 머무르고 싶은 소망도 생겼다. 얼굴에 햇빛이 내리면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가만히 있고 싶다.(「회복기의 노래」) 그러나 이것 또한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리라. ‘너를 기억하는 우리가 있으니’ ‘너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한빛 추모조형물에 쓰여있는 것처럼 한빛과 연리근처럼 연결될 때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그 이어진 빛과 힘을 믿기에 오늘도 나는 나와 한빛에게 토닥인다.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라고.
📝 김혜영. tvN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PD님의 엄마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곁에서 아들의 삶을 이어가려 애쓰고 있다
📸사진 설명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사진1.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시집 표지
사진2. 연리근(連理根) (그림: 이선주, 표현예술테라피스트)
사진3. 고 이한빛PD 추모 조형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너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너를 기억하는 우리가 있으니’)
📚 이달의 책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책'은 재난참사피해자가 또 다른 재난참사피해자에게 건네는 책으로써의 위로이자, 읽고 쓰기를 혼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상실 이후를 함께 나누는 장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회복 불가능한 시간을 책으로 겪어내는 이들에게 이달의 책이 잠시라도 숨 쉴 구멍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