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딧불의 위로, 가자의 어둠
반딧불이의 묘에서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보다
‘반딧불이의 묘’는 2차 세계대전 말 폭격이 쏟아지는 일본의 한 시골 마을이 배경이다. 공습으로 엄마를 잃고 굶주림 속에서 죽어간 남매의 비극을 그렸다.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일까, ‘반딧불이의 묘’를 보며 삶과 죽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전쟁이라는 낱말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는다. 이 애니메이션이 가해국을 미화했다는 비판은 정당하지만, ‘반딧불이의 묘’가 나에게 던진 질문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살아내야 하는 삶의 비참함이었다. 동생 앞에선 어른이 되어야 했던 아이, 당장 먹을 게 없어서 공습의 포화 속에 뛰어 들어가 물건을 훔쳐야만 했던 아이, 끝내 지키지 못한 동생을 스스로 화장하며 비로소 아이로 돌아온 들썩이는 작은 어깨. 전쟁의 폭격 뒤에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공동체의 폐허가 남았을 뿐이다.

반딧불이의 묘(1988), 다카하타 이사오, 스튜디오 지브리
‘반딧불이의 묘’를 지브리 스튜디오의 초기 작품 정도로만 알았던 나는 영화의 첫 장면부터 당황스러웠다. 현실에 덧칠을 할 수 있는 만화의 미덕을 외면한 사실적인 묘사로 끝까지 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내 마음이 힘들다고 중간에 눈을 돌릴 수도 없었다. 아이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는 게 나의 도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빛을 내고는 사라지는 반딧불이가 덧없는 생명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나에게 반딧불이는 어둠 속에서 아이들에게 아름다움과 위로를 전해준 고마운 존재였고, 남매의 비참한 삶 속에 잠깐의 행복이었고, 세츠코와 세이타의 마지막 길을 함께해 준 위로였다. 비참함 속에서도 끝내 잃지 않으려 했던 인간으로서의 온기이자, 동생을 웃게 해주고 싶었던 오빠의 마음이 바로 그 반딧불의 불빛이라 느꼈다.
남매의 삶을 보는데 팔레스타인의 아이들이 겹쳐 보였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피할 곳조차 없는 감옥 같은 가자지구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에게도 반딧불이가 있을까?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삶 역시 만화 속 남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이타와 세츠코가 전쟁 통에 부모와 집을 잃고, 동굴 속에서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서서히 죽어가는 것처럼 팔레스타인 아이들 역시 식수 부족, 식량 차단, 의료 붕괴로 인해 영화 속 세츠코처럼 목숨을 잃어 가고 있다. 만화 속 동굴의 굶주림이 가자지구에서는 지독한 현실이다. 남매에게 반딧불을 모으고 사탕을 먹는 소박한 행복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것처럼 서안 지구의 아이들은 학교를 가기 위한 이동조차 제한받고 있으며, 가자 지구의 아이들은 언제 폭격이 올지 모르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동의하지 않은 전쟁과 구조적 폭력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전쟁과 폭력의 고통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반딧불이의 묘와 팔레스타인을 바라보며, 도대체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멀리 떨어진 한국 땅에서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바라며 함께 외치는 구호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란다. 얼마 전 가자 지구 주민들을 위한 구호 물품을 싣고 이동하던 중 지중해의 공해에서 나포되었다가 돌아온 평화활동가 ‘해초’님의 용기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길 바란다.
미약해 보이는 우리의 관심이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는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반딧불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외쳐주세요!
“Free, Free Palestine!"
"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

평화 집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족의 저항의 상징
수박: 팔레스타인 국기 상징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군인들의 단속과 체포를 피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과 저항 의지를 드러낼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시장이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면서도 국기 색상을 모두 가진 '수박'을 들고 다니거나 그림으로 그려 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올리브 나무: 땅에 박은 뿌리, 지치지 않는 생명력
이스라엘 정착민들과 군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생계를 끊고 땅을 빼앗기 위해 수백만 그루의 올리브 나무를 고의로 베어내거나 불태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나무가 잘려 나간 자리에 다시 어린 올리브 묘목을 심으며 지치지 않는 저항(춤무드, Sumud·끈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카피예
검은색과 흰색의 격자무늬가 특징인 전통 스카프 '카피예'는 전 세계적으로 팔레스타인 연대의 가장 강력한 시각적 상징입니다. 이 스카프의 무늬에는 팔레스타인의 자연과 삶이 촘촘히 새겨져 있습니다. 야시르 아라파트 의장이 공식 석상에 항상 카피예를 쓰고 나타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집회에서 시민들이 카피예를 목에 두르는 것은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고통과 저항에 함께한다"는 가장 직관적인 선언입니다.
📝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신애진님의 엄마 김남희
📚 이달의 책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책'은 재난참사피해자가 또 다른 재난참사피해자에게 건네는 책으로써의 위로이자, 읽고 쓰기를 혼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상실 이후를 함께 나누는 장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회복 불가능한 시간을 책으로 겪어내는 이들에게 이달의 책이 잠시라도 숨 쉴 구멍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반딧불의 위로, 가자의 어둠
반딧불이의 묘에서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보다
‘반딧불이의 묘’는 2차 세계대전 말 폭격이 쏟아지는 일본의 한 시골 마을이 배경이다. 공습으로 엄마를 잃고 굶주림 속에서 죽어간 남매의 비극을 그렸다.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일까, ‘반딧불이의 묘’를 보며 삶과 죽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전쟁이라는 낱말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는다. 이 애니메이션이 가해국을 미화했다는 비판은 정당하지만, ‘반딧불이의 묘’가 나에게 던진 질문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살아내야 하는 삶의 비참함이었다. 동생 앞에선 어른이 되어야 했던 아이, 당장 먹을 게 없어서 공습의 포화 속에 뛰어 들어가 물건을 훔쳐야만 했던 아이, 끝내 지키지 못한 동생을 스스로 화장하며 비로소 아이로 돌아온 들썩이는 작은 어깨. 전쟁의 폭격 뒤에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공동체의 폐허가 남았을 뿐이다.
반딧불이의 묘(1988), 다카하타 이사오, 스튜디오 지브리
‘반딧불이의 묘’를 지브리 스튜디오의 초기 작품 정도로만 알았던 나는 영화의 첫 장면부터 당황스러웠다. 현실에 덧칠을 할 수 있는 만화의 미덕을 외면한 사실적인 묘사로 끝까지 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내 마음이 힘들다고 중간에 눈을 돌릴 수도 없었다. 아이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는 게 나의 도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빛을 내고는 사라지는 반딧불이가 덧없는 생명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나에게 반딧불이는 어둠 속에서 아이들에게 아름다움과 위로를 전해준 고마운 존재였고, 남매의 비참한 삶 속에 잠깐의 행복이었고, 세츠코와 세이타의 마지막 길을 함께해 준 위로였다. 비참함 속에서도 끝내 잃지 않으려 했던 인간으로서의 온기이자, 동생을 웃게 해주고 싶었던 오빠의 마음이 바로 그 반딧불의 불빛이라 느꼈다.
남매의 삶을 보는데 팔레스타인의 아이들이 겹쳐 보였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피할 곳조차 없는 감옥 같은 가자지구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에게도 반딧불이가 있을까?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삶 역시 만화 속 남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이타와 세츠코가 전쟁 통에 부모와 집을 잃고, 동굴 속에서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서서히 죽어가는 것처럼 팔레스타인 아이들 역시 식수 부족, 식량 차단, 의료 붕괴로 인해 영화 속 세츠코처럼 목숨을 잃어 가고 있다. 만화 속 동굴의 굶주림이 가자지구에서는 지독한 현실이다. 남매에게 반딧불을 모으고 사탕을 먹는 소박한 행복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것처럼 서안 지구의 아이들은 학교를 가기 위한 이동조차 제한받고 있으며, 가자 지구의 아이들은 언제 폭격이 올지 모르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동의하지 않은 전쟁과 구조적 폭력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전쟁과 폭력의 고통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반딧불이의 묘와 팔레스타인을 바라보며, 도대체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멀리 떨어진 한국 땅에서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바라며 함께 외치는 구호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란다. 얼마 전 가자 지구 주민들을 위한 구호 물품을 싣고 이동하던 중 지중해의 공해에서 나포되었다가 돌아온 평화활동가 ‘해초’님의 용기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길 바란다.
미약해 보이는 우리의 관심이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는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반딧불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외쳐주세요!
“Free, Free Palestine!"
"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군인들의 단속과 체포를 피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과 저항 의지를 드러낼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시장이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면서도 국기 색상을 모두 가진 '수박'을 들고 다니거나 그림으로 그려 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정착민들과 군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생계를 끊고 땅을 빼앗기 위해 수백만 그루의 올리브 나무를 고의로 베어내거나 불태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나무가 잘려 나간 자리에 다시 어린 올리브 묘목을 심으며 지치지 않는 저항(춤무드, Sumud·끈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검은색과 흰색의 격자무늬가 특징인 전통 스카프 '카피예'는 전 세계적으로 팔레스타인 연대의 가장 강력한 시각적 상징입니다. 이 스카프의 무늬에는 팔레스타인의 자연과 삶이 촘촘히 새겨져 있습니다. 야시르 아라파트 의장이 공식 석상에 항상 카피예를 쓰고 나타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집회에서 시민들이 카피예를 목에 두르는 것은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고통과 저항에 함께한다"는 가장 직관적인 선언입니다.
📝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신애진님의 엄마 김남희
📚 이달의 책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책'은 재난참사피해자가 또 다른 재난참사피해자에게 건네는 책으로써의 위로이자, 읽고 쓰기를 혼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상실 이후를 함께 나누는 장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회복 불가능한 시간을 책으로 겪어내는 이들에게 이달의 책이 잠시라도 숨 쉴 구멍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