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판결]중대재해처벌법 시행 4년…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판결이 남긴 질문(하)

202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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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시행 4년…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판결이 남긴 질문(하)



‘실질적이고 충분한 피해 회복’의 의미


아리셀 항소심 재판부는 앞선 1심과 ‘양형 판단’을 달리했습니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피해자 측과의 합의를 제한적으로 양형에 반영하게 되면, 오히려 피고인으로 하여금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소극적으로 하게 하거나 급기야는 포기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이는 결국에는 피해자 측의 실질적이고 충분한 피해 회복을 어렵게 한다.”1


이러한 해석은 일반적으로 ‘피해자와의 합의’를 양형에 반영하는 이유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러나 중대산업재해 사건에서 합의를 양형에 반영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고, 나아가 다수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피해자의 실질적이고 충분한 피해 회복’이 무엇인지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문을 남깁니다. 


아리셀 대책위 법률지원단은 선고 이후 ‘(항소심 재판부는) 본건 합의가 피해자의 피해를 충분히 회복시킨 합의인지에 관해서는 심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2 23명이 사망한 사건에서 ‘금전적 피해회복’의 개념이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표했고, 외국인 유족에게 차별적인 합의안을 제시하는 등 사측의 합의 과정 및 내용의 문제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짚었습니다. 


아리셀 참사 유족 최현주 씨는 오마이뉴스 기고문에서 “사측은 유족들에게 부분합의를 종용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지친 유족들은 체념 상태에서 합의를 하기도 했다”, “투쟁을 하면서 저희들이 요구했던 것은 진심 어린 사과, 엄중 처벌, 재발방지대책 마련 이 세 가지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저희들이 줄기차게 외쳐왔던 이 세 가지는 현재 단 하나도 이뤄진 것이 없다”라고 적었습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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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3일, 아리셀 1심 판결 이후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아리셀 대책위 기자회견이 열렸다.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이 직접적인 재해의 원인


위와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항소심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의 유·무죄 판단에 있어 ‘직접 인과관계’를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구성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먼저 ①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재해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점, ②법에 명시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고, 나아가 ③해당 의무 위반과 재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합니다. 


지금까지 법원은 ③번 인과관계를 두 단계에 걸쳐 판단해 왔습니다. 


경영책임자 등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명시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중간관리자 혹은 종사자의 과실4이 발생하고(1단계), 해당 과실로 인해 재해가 발생했다는(2단계) 점이 입증돼야 했습니다. 


아리셀 1심 재판부도 위 구조로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박순관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상의 5가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미이행해 사업장 내 ‘비상구·비상통로 유지 의무’가 지켜지지 않았고(1단계), 사고 당시 비상구와 비상통로를 쉽게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수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결과가 발생했다고(2단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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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인과관계 판단 내용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박순관 대표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과 재해 발생 사이의 직접 인과관계를 인정했습니다. 아래 3가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이러한 의무 위반이 사고 발생 및 피해 확대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습니다.5


1) 유해·위험요인 확인 개선 업무절차 마련 미이행(비정상적으로 열이 나는 배터리의 분류·분리 절차를 마련했다면 폭발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2) 안전 관련 예산 편성 및 집행 의무 미이행(안전 확보를 위해 배터리 발열을 확인할 수 있는 열감지기, 에이징룸6 등을 위한 예산을 미리 편성했다면 화재 발생을 예방하고, 적절한 소방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3) 중대산업재해 발생에 대비한 매뉴얼 마련 미이행(발열 배터리 발생 시 따라야 할 매뉴얼을 미리 마련했다면 선행 폭발사고 발생 직후 후속공정이 중단되어 화재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자체가 산업재해를 유발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판단한 첫 사례입니다. 인과관계의 매개 역할을 하는 다른 과실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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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인과관계 판단 내용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이 유죄로 판단한 ‘비상구·비상통로 유지 의무 위반’을 무죄로 보았고7, 박순관 대표에게 적용된 5가지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중 2가지에 대해서도 무죄로 판단했습니다.8 검찰은 항소심 판결에 ‘중대한 법리오해가 있다’며 상고했고,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 * *


2021년 1월 8일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던 날, 강은미 의원은 “이 법의 취지는 사법부의 해석과 판결에 상당 부분 위임되어 있으므로, 법 제정의 취지를 살리는 사법부의 적극적인 해석과 판결을 기대한다”고 발언했습니다.9


아리셀 판결은 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지에 관한 유의미한 질문을 남겼습니다. ▲피해자와의 합의를 양형에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참사에서 ‘실질적인 피해 회복’의 기준은 무엇인지,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과 재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등의 질문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아리셀 항소심 이후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중대재해처벌법 양형기준 마련에 착수했습니다. 지난 5월 11일 열린 제145차 전체회의에서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범죄’ 양형기준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범죄를 추가했고, 중대산업재해 범죄로 형이 확정된 뒤 5년 이내에 같은 범죄를 저지를 경우 형량을 1.5배 가중하도록 정했습니다. 구체적인 권고 형량의 범위, 양형 인자(가중·감경 사유), 확정된 양형기준을 적용할 시점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산업재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권한과 책임에 맞는 처벌 기준의 확립'과 ‘안전 문화의 확산’이 법원의 판결을 거쳐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사법부로 그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1. 수원고등법원 2026. 4. 22. 선고 2025노1502 판결, 123쪽
2. 참여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판결비평 토론회: 아리셀 참사 2심 판결의 법리적 한계를 짚다〉 자료집, 2026, 18쪽
3. 🔗 최현주 기고, 〈아리셀 유족인 나는 왜 합의를 했나〉, 오마이뉴스, 2026. 4. 29.
4. 주로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보건 조치의무 위반이 ‘매개가 되는 과실’로 인정돼 왔다.
5.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5가지 의무 위반 사항 중 3가지만 인정했다. ‘안전·보건에 관한 목표 및 경영방침 설정 의무’,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에 대한 평가기준 마련 의무’의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6. 리튬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배터리 성능을 안정화하기 위해 일정 기간 보관·검사하는 공정을 ‘에이징’이라고 한다.
7. ‘비상구·비상통로 유지 의무’에 대한 1심과 항소심의 해석이 달랐다. 1심은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에는 각 층마다 비상구를 설치 및 유지해야 한다’고 봤고, ‘화재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은 비상구와 비상통로를 쉽게 이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반면 항소심은 비상구 설치 의무가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위치한 층에 한정된다고 봤다. 이 사건 화재는 3동 2층에서 발생했지만, 위험물질(리튬)을 취급하는 작업장은 1층에 있었으므로 2층에는 비상구를 설치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비상통로의 경우 별도의 설치·유지 의무를 인정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8. 아리셀 대책위 법률지원단은 위 참여연대 토론회 자료집 15쪽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한 두 가지 의무 중 ‘안전보건관리책임자 평가 기준 마련 의무’ 위반은 재해 발생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영책임자인 박순관이 적절한 평가 기준을 수립하고 이를 안내·교육한 뒤 평가했다면,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인 박중언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다.
9. 전상수 외, 앞의 책, 46쪽



🔗[판결문 보기] 아리셀중대재해참사 1심 판결 -  수원지방법원 2025. 9. 23. 선고 2024고합833, 2025고합24(병합), 529(병합)

🔗[판결문 보기] 아리셀중대재해참사 2심 판결 -  수원고등법원 2026. 4. 22 선고 2025노1502



📝글|코트워치(@courtwatch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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