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찾아, 땅을 고르다
4월 13일 무안공항에서 유해 수습이 시작된 이래, 유가족들과 함께 하는 단체 텔레그램방에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속보가 전해집니다.
12, 63, 42, 113…… 하루마다 발견되고 있는 유해 추정 수들입니다.
마음이 바빠집니다. 가서 할 수 있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 잠시라도 있어야하지 않을까?
4월 20일과 21일 양일간 일정을 조정해 센터 활동가들이 무안국제공항을 찾습니다.
"이 먼데까지 또 어떻게 오셨어요? 너무 반가워요"
한번 한번 만날 때마다 얼굴을 익히는 수가 많아지니, 모든 가족분들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광주에 도착할 무렵부터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오후 작업이 시작될 무렵 빗방울도 바람도 더 거세졌습니다.
"오늘 수색은 가능할까요?"
"70mm 이상 안 내리면 하는 걸로 군·경과 이야기했어요."
"자 이제 수색을 시작합니다"
1시 30분. 수색 시작 외침이 들리자 사람들이 참사 현장을 둘러쌉니다.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간단한 묵념을 하고, 모두 각자의 위치에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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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여개가 넘는 그리드. 수색현장은 계속 늘어나는 중 | 묵념으로 시작되는 수색 |
약 2만 6천㎡에 달하는 사고 현장에 13일부터 유가족을 포함해 관·군·경 200여 명이 투입돼 재수색이 시작됐습니다.
경찰이 활주로로 사고 구역을, 군은 활주로 담장 밖 통제지역을 맡습니다.
작업은, 5m*5m, 또는 3.6m*3.6m로 설정된 그리드마다 1차로 낫이나 갈퀴로 풀 등을 베고 손으로 땅을 고르며 유해나 잔해를 수습하고, 2차로 호미로 땅을 긁어 풀이 깊에 뿌리를 내린 땅을 파내고, 3차로 삽을 이용해 20~30센티가량 땅을 판 뒤 풀의 뿌리를 솎아내고, 4차로 양동이에 그 흙을 담아 체에 거르는 수순으로 진행됩니다.
1차부터 4차까지 모두 한땀 한땀 사람의 손을 거쳐, 1센티 이상의 유해를 수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유해로 추정되는 것이 발견되면 발견자는 그 자리에서 손을 들고 대기하거나, 움직여할 때는 그 자리에 노란 깃발을 꽂습니다. 그러면 전문조사인력이 달려가 유해여부를 1차적으로 판단한 뒤 촬영하고 발견자와 크기, 구역 등을 세세히 기록한 뒤 보관해 국과수로 보냅니다.
애초 결과는 1주일마다 정리해 유가협에 통보하기로 했지만 유해수습이 다 끝난 뒤 한번에 통보하는 것으로 수정됐습니다. 하지만 가족들 안에서는, 유해가 확인될 때마다 통보받을 지, 아니면 전체 작업이 끝난 뒤에 통보 받을지 뜨거운 논란입니다.
벌써 두 차례나 전화를 받았다는 한 유가족은, 이제 낯선 전화번호가 찍힐 때마다 놀란다고 털어놓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유해수습을 믿을 수 없다는 가족들은 발견될 때마다 통보받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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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로 외곽 지역의 수색을 맡은 군 | 활주로 지역의 수색을 맡은 경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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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과 호미 작업 이후 땅을 파는 작업 | 판 흙은 체에 거르는 작업 |
낫과 호미, 체를 쥔 가족들
애초 유가족들은 이 과정을 검증하기로 했으나, 수색 첫날부터 직접 낫과 호미와 체를 손에 쥐었습니다.
센터가 방문한 20일에는 매서운 바람에 찬 기운이 감돌았지만 얇은 비닐 우비에 의지해 끝내 현장을 떠나지 않았고, 이튿날은 변덕처럼 쏟아지는 뙤약볕, 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에도 손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켜보시지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이틀 내내 낫을 들고 풀을 벤 김영필 아버님께 묻습니다. 30대 아이들을 잃은 70대 노인이 답합니다.
"유족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 절실한 마음을 보여줘야, 군경이 우리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지 않겠어요."
아버님이 낫으로 풀을 베고 땅을 쓸었을 뿐인데, 손길이 닿는 곳곳마다 유해가 쉽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수습되기를 기다렸을 희생자의 간절함과 동시에 그간 유해 수습이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확인하게 되는 분노가 교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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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수습한 유해 | 가족들이 수습한 유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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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고르며 유해수습에 나선 가족들 | 땅을 고르며 유해수습에 나선 가족들 |
센터 활동가들도 호미와 낫을 들고 한 뼘씩 풀을 걷어냈습니다. 체에 흙을 거르며 혹여 유해 조각이 섞여 있지 않을까 손끝의 감각에 온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그러다 정말, 유해를 찾았습니다. 혹여 상하기라도 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직접 수습하지 못하고 가족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그 자리에는 노란 깃발이 꽂힙니다.
그렇게 20일 하루에만 119점의 유해가, 21일에는 173점의 유해가 발견됐습니다. 국과수 경력 20년이 넘는다는 전문가조차 "이렇게 계속 나오는 일은 유래가 없다"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 참담한 현실이, 우리가 파헤친 흙 속에 고스란히 묻혀 있었습니다.
찾아도 걱정, 못 찾아도 걱정
유해가 발견될 때마다 가족들의 얼굴에는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스쳤습니다. 하나라도 더 찾아 온전히 보내주고 싶은 마음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조각난 뼈로 다시 마주해야 하는 공포가 뒤섞인 얼굴이었습니다. 찾으면 또다시 장례를 치러야 하는 가혹한 현실, 찾지 못하면 어딘가에 쓰레기처럼 방치될 거라는 불안함.
"찾아도 걱정, 못 찾아도 걱정"
가족들이 무심결에 내뱉는 이 말이 그 어떤 통곡보다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왔을 뿐인데, 직접 유해를 수습한 활동가는 앓아 누웠습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어려웠겠지요.
잠시 다녀온 우리도 이토록 힘겨운데, 참사 후 1년 4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 땅을 바라만봐야했을 유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오늘 이 시간도 땅을 고르며 유해를 수습하고 있을 가족들의 고통은 어떨까요.
지금 가족들의 바람은 여름 장마철로 접어들기 전에 이 작업이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5월 중순 마무리로 예정된 유해수습 작업은 쏟아지는 유해로 더 장기화될 전망입니다. 군과 경찰 역시 지금 발견되는 양으로 보았을 땐, 애초 예정한 것보다 2배, 많은 곳은 3~4배의 시간이 소요되고 있고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유해를 수습하는 것은 고인의 존엄을 지키고, 남겨진 이들이 비로소 고인을 온전히 배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가족들이 그 땅에서 흙을 고르고 있는 시간은 이 문장을 몸으로 써 내려가고 있는 시간들입니다. 재수색은 지금도,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희생자 한 분 한 분이 모두 가족의 곁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억하고 연대해주시기를 바랍니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179분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가족을 찾아, 땅을 고르다
4월 13일 무안공항에서 유해 수습이 시작된 이래, 유가족들과 함께 하는 단체 텔레그램방에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속보가 전해집니다.
12, 63, 42, 113…… 하루마다 발견되고 있는 유해 추정 수들입니다.
마음이 바빠집니다. 가서 할 수 있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 잠시라도 있어야하지 않을까?
4월 20일과 21일 양일간 일정을 조정해 센터 활동가들이 무안국제공항을 찾습니다.
"이 먼데까지 또 어떻게 오셨어요? 너무 반가워요"
한번 한번 만날 때마다 얼굴을 익히는 수가 많아지니, 모든 가족분들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광주에 도착할 무렵부터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오후 작업이 시작될 무렵 빗방울도 바람도 더 거세졌습니다.
"오늘 수색은 가능할까요?"
"70mm 이상 안 내리면 하는 걸로 군·경과 이야기했어요."
"자 이제 수색을 시작합니다"
1시 30분. 수색 시작 외침이 들리자 사람들이 참사 현장을 둘러쌉니다.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간단한 묵념을 하고, 모두 각자의 위치에 섭니다.
약 2만 6천㎡에 달하는 사고 현장에 13일부터 유가족을 포함해 관·군·경 200여 명이 투입돼 재수색이 시작됐습니다.
경찰이 활주로로 사고 구역을, 군은 활주로 담장 밖 통제지역을 맡습니다.
작업은, 5m*5m, 또는 3.6m*3.6m로 설정된 그리드마다 1차로 낫이나 갈퀴로 풀 등을 베고 손으로 땅을 고르며 유해나 잔해를 수습하고, 2차로 호미로 땅을 긁어 풀이 깊에 뿌리를 내린 땅을 파내고, 3차로 삽을 이용해 20~30센티가량 땅을 판 뒤 풀의 뿌리를 솎아내고, 4차로 양동이에 그 흙을 담아 체에 거르는 수순으로 진행됩니다.
1차부터 4차까지 모두 한땀 한땀 사람의 손을 거쳐, 1센티 이상의 유해를 수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유해로 추정되는 것이 발견되면 발견자는 그 자리에서 손을 들고 대기하거나, 움직여할 때는 그 자리에 노란 깃발을 꽂습니다. 그러면 전문조사인력이 달려가 유해여부를 1차적으로 판단한 뒤 촬영하고 발견자와 크기, 구역 등을 세세히 기록한 뒤 보관해 국과수로 보냅니다.
애초 결과는 1주일마다 정리해 유가협에 통보하기로 했지만 유해수습이 다 끝난 뒤 한번에 통보하는 것으로 수정됐습니다. 하지만 가족들 안에서는, 유해가 확인될 때마다 통보받을 지, 아니면 전체 작업이 끝난 뒤에 통보 받을지 뜨거운 논란입니다.
벌써 두 차례나 전화를 받았다는 한 유가족은, 이제 낯선 전화번호가 찍힐 때마다 놀란다고 털어놓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유해수습을 믿을 수 없다는 가족들은 발견될 때마다 통보받기를 원합니다.
낫과 호미, 체를 쥔 가족들
애초 유가족들은 이 과정을 검증하기로 했으나, 수색 첫날부터 직접 낫과 호미와 체를 손에 쥐었습니다.
센터가 방문한 20일에는 매서운 바람에 찬 기운이 감돌았지만 얇은 비닐 우비에 의지해 끝내 현장을 떠나지 않았고, 이튿날은 변덕처럼 쏟아지는 뙤약볕, 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에도 손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켜보시지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이틀 내내 낫을 들고 풀을 벤 김영필 아버님께 묻습니다. 30대 아이들을 잃은 70대 노인이 답합니다.
"유족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 절실한 마음을 보여줘야, 군경이 우리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지 않겠어요."
아버님이 낫으로 풀을 베고 땅을 쓸었을 뿐인데, 손길이 닿는 곳곳마다 유해가 쉽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수습되기를 기다렸을 희생자의 간절함과 동시에 그간 유해 수습이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확인하게 되는 분노가 교차합니다.
센터 활동가들도 호미와 낫을 들고 한 뼘씩 풀을 걷어냈습니다. 체에 흙을 거르며 혹여 유해 조각이 섞여 있지 않을까 손끝의 감각에 온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그러다 정말, 유해를 찾았습니다. 혹여 상하기라도 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직접 수습하지 못하고 가족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그 자리에는 노란 깃발이 꽂힙니다.
그렇게 20일 하루에만 119점의 유해가, 21일에는 173점의 유해가 발견됐습니다. 국과수 경력 20년이 넘는다는 전문가조차 "이렇게 계속 나오는 일은 유래가 없다"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 참담한 현실이, 우리가 파헤친 흙 속에 고스란히 묻혀 있었습니다.
찾아도 걱정, 못 찾아도 걱정
유해가 발견될 때마다 가족들의 얼굴에는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스쳤습니다. 하나라도 더 찾아 온전히 보내주고 싶은 마음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조각난 뼈로 다시 마주해야 하는 공포가 뒤섞인 얼굴이었습니다. 찾으면 또다시 장례를 치러야 하는 가혹한 현실, 찾지 못하면 어딘가에 쓰레기처럼 방치될 거라는 불안함.
"찾아도 걱정, 못 찾아도 걱정"
가족들이 무심결에 내뱉는 이 말이 그 어떤 통곡보다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왔을 뿐인데, 직접 유해를 수습한 활동가는 앓아 누웠습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어려웠겠지요.
잠시 다녀온 우리도 이토록 힘겨운데, 참사 후 1년 4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 땅을 바라만봐야했을 유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오늘 이 시간도 땅을 고르며 유해를 수습하고 있을 가족들의 고통은 어떨까요.
지금 가족들의 바람은 여름 장마철로 접어들기 전에 이 작업이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5월 중순 마무리로 예정된 유해수습 작업은 쏟아지는 유해로 더 장기화될 전망입니다. 군과 경찰 역시 지금 발견되는 양으로 보았을 땐, 애초 예정한 것보다 2배, 많은 곳은 3~4배의 시간이 소요되고 있고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유해를 수습하는 것은 고인의 존엄을 지키고, 남겨진 이들이 비로소 고인을 온전히 배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가족들이 그 땅에서 흙을 고르고 있는 시간은 이 문장을 몸으로 써 내려가고 있는 시간들입니다. 재수색은 지금도,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희생자 한 분 한 분이 모두 가족의 곁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억하고 연대해주시기를 바랍니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179분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