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만의 명예 회복, 그리고 함께 만들어낸 변화”
지난 4월 7일,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실에서는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와 함께하는 <참사와 서사>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수업에는 1999년 인천 인현동 화재참사로 여동생을 잃은 유가족, 이정환 님이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번 만남은 단순히 한 개인의 기억을 나누는 자리를 넘어,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문제 제기와 제도 변화의 과정을 함께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르바이트 가던 날, 마지막으로 건넨 용돈”
이정환 님은 학생들에게 동생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고 이지혜 학생은 평소에도 가족을 잘 챙기고,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던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사고 당일 역시 평소와 다르지 않게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서는 날이었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 그는 동생에게 용돈을 쥐어주었습니다.
그때는 그저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고, 짧은 인사와 함께 이어질 일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장면은 시간이 흐른 뒤, 가장 오래 남은 기억이 되었습니다.
그날 건넸던 용돈과 짧은 대화,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섰던 뒷모습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정환 님은 동생을 떠올리며,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그저 가족을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던 평범한 모습이 가장 먼저 기억난다고 말했습니다.
인현동 화재참사와 ‘배제된 피해자’의 문제
인현동 화재참사는 불법 영업과 안전관리 부실, 업주와 공무원간의 유착비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참사였습니다. 비상구가 막힌 건물 안에서 다수의 학생들이 탈출하지 못한 채 희생되었습니다.
고 이지혜 학생 역시 이 참사의 희생자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도는 그를 피해자가 아닌 ‘종업원’으로 분류하였고, 이로 인해 보상 대상에서 제외되는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를 어떻게 정의하고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26년 만의 변화, 조례 개정을 통한 명예 회복
이 부당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오랜 시간 이어졌습니다. 유가족들은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하고 소송을 진행했지만, 제도는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는 포기하지 않았고, 끈질긴 문제 제기와 연대를 통해 결국 제도 개선의 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결과, 고 이지혜 학생은 27년 만에 비로소 참사의 ‘피해자’로 인정받게 되었고, 조례 개정을 통해 명예 회복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한 개인의 억울함을 바로잡는 것을 넘어, 재난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혼자가 아닌 싸움, 함께 만들어낸 결과
이정환 님은 수업에서 이번 변화가 결코 가족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오랜 시간 유가족회가 중심이 되어 싸워왔고, 이후 시민사회단체와 지역사회, 언론 등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하면서 문제는 사회적 의제로 확장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지만,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가능해졌다”는 그의 말은, 이번 제도 개선이 ‘연대의 결과’였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같은 참사를 겪은 다른 유가족들의 존재는, 이 싸움을 지속할 수 있는 중요한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어가야 할 질문
이번 수업은 학생들에게 재난이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사회적 과제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했습니다.
누가 피해자로 인정되는지, 어떤 기준으로 보호받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배제되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습니다.
고 이지혜 학생의 명예 회복 과정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사회가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는 앞으로도 피해자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고,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함께 목소리를 이어가겠습니다.
“26년 만의 명예 회복, 그리고 함께 만들어낸 변화”
지난 4월 7일,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실에서는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와 함께하는 <참사와 서사>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수업에는 1999년 인천 인현동 화재참사로 여동생을 잃은 유가족, 이정환 님이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번 만남은 단순히 한 개인의 기억을 나누는 자리를 넘어,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문제 제기와 제도 변화의 과정을 함께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르바이트 가던 날, 마지막으로 건넨 용돈”
이정환 님은 학생들에게 동생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고 이지혜 학생은 평소에도 가족을 잘 챙기고,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던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사고 당일 역시 평소와 다르지 않게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서는 날이었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 그는 동생에게 용돈을 쥐어주었습니다.
그때는 그저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고, 짧은 인사와 함께 이어질 일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장면은 시간이 흐른 뒤, 가장 오래 남은 기억이 되었습니다.
그날 건넸던 용돈과 짧은 대화,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섰던 뒷모습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정환 님은 동생을 떠올리며,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그저 가족을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던 평범한 모습이 가장 먼저 기억난다고 말했습니다.
인현동 화재참사와 ‘배제된 피해자’의 문제
인현동 화재참사는 불법 영업과 안전관리 부실, 업주와 공무원간의 유착비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참사였습니다. 비상구가 막힌 건물 안에서 다수의 학생들이 탈출하지 못한 채 희생되었습니다.
고 이지혜 학생 역시 이 참사의 희생자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도는 그를 피해자가 아닌 ‘종업원’으로 분류하였고, 이로 인해 보상 대상에서 제외되는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를 어떻게 정의하고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26년 만의 변화, 조례 개정을 통한 명예 회복
이 부당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오랜 시간 이어졌습니다. 유가족들은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하고 소송을 진행했지만, 제도는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는 포기하지 않았고, 끈질긴 문제 제기와 연대를 통해 결국 제도 개선의 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결과, 고 이지혜 학생은 27년 만에 비로소 참사의 ‘피해자’로 인정받게 되었고, 조례 개정을 통해 명예 회복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한 개인의 억울함을 바로잡는 것을 넘어, 재난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혼자가 아닌 싸움, 함께 만들어낸 결과
이정환 님은 수업에서 이번 변화가 결코 가족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오랜 시간 유가족회가 중심이 되어 싸워왔고, 이후 시민사회단체와 지역사회, 언론 등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하면서 문제는 사회적 의제로 확장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지만,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가능해졌다”는 그의 말은, 이번 제도 개선이 ‘연대의 결과’였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같은 참사를 겪은 다른 유가족들의 존재는, 이 싸움을 지속할 수 있는 중요한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어가야 할 질문
이번 수업은 학생들에게 재난이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사회적 과제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했습니다.
누가 피해자로 인정되는지, 어떤 기준으로 보호받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배제되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습니다.
고 이지혜 학생의 명예 회복 과정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사회가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는 앞으로도 피해자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고,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함께 목소리를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