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아빠 괜찮아" 한마디로 버텨온 12년, 폐허 위에서 찾은 소명- 2026 '참사와 서사' 수업 참관기 ③세월호참사 김영주님

2026-04-01

지난 3월 31일,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실에서는 아주 특별한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와 함께하는 <참사와 서사> 수업의 네 번째 시간으로, 2014년 세월호참사로 어머니를 잃은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김영주 님이 방문했습니다. 김영주 님은 참사 이후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겪어온 개인적인 비극과 더불어, '일반인 유가족'으로서 마주해야 했던 사회적 소외와 차별의 경험을 학생들에게 가감 없이 전했습니다.


aa75a341121f4.jpeg


그리움과 후회로 남은 어머니의 마지막 여정

 

강연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하고도 아픈 기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으면서도 건강을 위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셨던 어머니는 국토 종주의 마지막 구간인 제주도 도장을 찍기 위해 세월호에 오르셨습니다. 아들들이 선물한 비싼 자전거가 죽음으로 가는 길동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김영주 님은 "그때 자전거를 사드리지 않았더라면, 제주도행을 말렸더라면 어머니가 지금 곁에 계시지 않았을까"라며 평생의 한이 된 효도의 역설을 고백했습니다. 특히 수습된 어머니의 시신에 가득했던 멍 자국은 마지막 순간까지 살기 위해 사투를 벌였을 어머니의 고통을 짐작게 해 학생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일반인 유가족이라는 이름의 '이중 고통'

 

김영주 님은 참사 자체의 슬픔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일반인 유가족'을 향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무관심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진도 체육관과 국회 농성장 등 모든 공간에서 일반인 유가족들은 단원고 유가족의 그늘에 가려져 늘 변두리와 구석으로 밀려나야 했습니다. 행정적 차별 또한 비인격적이었습니다. 안산이라는 특별재난지역 거주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일반인 유가족들은 통장 잔고 300만 원까지 검사받으며 가난을 증명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차별을 알리기 위해 시청 앞 광장에서 침대를 놓고 노숙 시위를 벌이기도 했으나, 세상의 초점은 오직 한곳에만 쏠려 있었고 그들의 외침은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가 될 뿐이었습니다.

 

증발해 버린 40대, 그럼에도 이어가는 소명

 

참사 이후 김영주 님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유가족 협의회 활동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고, 아내 역시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주변의 시선을 견디지 못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수입이 끊긴 4~5년 동안 자녀들에게 넉넉한 용돈 한 번 주지 못한 채 '무책임한 아빠'가 된 것 같아 자책하며 보낸 시간들이었습니다. 본인의 40대가 통째로 증발해 버렸다고 표현한 그는, 협의회 임원으로서 다른 이들을 지탱하기 위해 정작 자신의 슬픔은 12년 동안 억누르며 살아야 했습니다.

 

42e0800c6c6eb.jpeg


학생들에게 전하는 진심 어린 당부

 

현재 인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서 근무하며 희생자들을 지키고 있는 김영주 님은 마지막으로 창작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습니다. "꿈속에서 만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현실에서 만날 수 있을 때 가족에게 한 번이라도 더 다정하게 대하십시오"라는 그의 목소리에는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된 일상의 소중함이 절절히 묻어났습니다.

 

이번 만남은 학생들이 재난의 서사가 단순히 숫자로 기록된 사건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현재진행형의 고통이자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차별의 과제임을 깊이 이해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메일 kdrcwithus@gmail.com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 6 부성빌딩 7층


ⓒ 2023 all rights reserved - 재난피해자권리센터.

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주소 (04559)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 6, 부성빌딩 7층

Tel 02-2285-2014

E-mail kdrcwithus@gmail.com

인스타그램 @kdrcwithus

ⓒ 재난피해자권리센터 All Rights reserved. SITE BY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