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순한 진심
#프롤로그
긴 겨울을 지나가고 있다. 3월이 되고 4월이 되어도 봄은 오지 않는다. 믿었던, 믿고 싶었던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는 지지부진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꾸려진 합동수사팀은 참사 직후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가 잘 되었다고 말했다. 그때 난 특수본에게서 ‘군중유체화’가 사망의 원인이라고 쓰여진 보고서를 달랑 받았을 뿐이었다. 군중유체화는 현상이지 원인이 될 수 없다. 부작위로 일관한 공무원들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희생자들이 서로의 무게로 서로를 질식케 했다며 희생자들에게 참사의 책임을 뒤집어씌운 게 잘된 수사였다니, 부관참시를 당하는 듯하다.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진실은 계절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더디기만 한 진상규명의 길 위에서 접한 어느 간담회에서 난 울며 이야기했다.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그저 진상규명. 그 한 가지입니다. 유가족의 마음이 보이지 않으신가요?” 나의 겨울은 깜깜하고 시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분노, 좌절, 슬픔이 마음 속에서 마그마로 끓어올랐다. 다시 우울증약을 먹기 시작했다.
특조위 면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단순한 진심’을 떠올렸다. ‘나의 진심은 무엇일까’, ‘진심은 단순해지는 건가’. 제목은 단순한데, 생각은 복잡해져만 갔다. ‘단순한 진심’은 내가 좋아하는 조해진 작가의 소설이다.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조해진 작가의 ‘단순한 진심’이 지금도 내 머릿속 어딘가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애진이를 보내고 맞은 첫 겨울의 어느 밤에 ‘단순한 진심’을 만났다. 문장을 삼킬 때마다 눈물이 쏟아졌다. 작가 또한 눈물을 삼키며 문장을 쏟아냈으리라 생각하니, 차마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넋 놓고 울기만 했다. 책을 읽다 우는 건지 울고 싶어 읽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왜 그리도 눈물이 났을까. 책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다 나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문주의 마음, 추연희의 마음 그리고 리사의 마음, 그리고 이름 모를 노파의 마음까지, 한 줄 한 줄의 문장이 다 나의 마음이었다. 가끔씩 책의 문장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심장에 꽂히는 날이 있다. 오늘 같은 날.
“죽는 건 하나도 안 가여워. 사는 게, 살아 있다는 게 지랄맞은 거지....” (152쪽)
오늘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이름 모를 노파의 읊조림이 생각난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복희가 웃었다. 웃을 때 복희는 더 이상 외로움과 분노를 체득한 노년의 표본 같지 않았지만, 대신 쓸쓸해 보였다. 끊임없이 내벽에 상처를 덧내며 시간과 함께 공처럼 굴려 왔을 어떤 마음이 인간의 얼굴로 빚어진다면 꼭 그녀 같지 않을까. (70쪽)
오늘 내 얼굴이 복희와 같지 않을까. 끊임없는 내벽에 상처를 덧내며 시간과 함께 굴러가는 쓸쓸한 얼굴. 살아있는 게 지랄맞다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내 얼굴이 복희의 얼굴일 것만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단순한 진심’의 인물들이 살아나 내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것 같다. 상처를 덧내며 기다림으로, 그리움으로, 사랑으로 꾸역꾸역 삶을 살아가는 마음. 아픈 복희(추연희)와 이름 모를 노파가 나와 함께 걸어준다. 그들의 그림자가 조용히 내 그림자를 따라온다.
우울한 발걸음으로 집을 향하며 ‘단순한 진심’을 다시 읽어야지, 맘을 먹는다. 이렇게 우울한 날에는 이 책이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 줄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단순한 진심’을 손에 들었다.

# 이름, 새로 태어난 생명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첫 번째 말
사람에게 쓸모가 없는 잡초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저 잡초일 뿐입니다. 사람에게 이롭고, 관계를 맺는 풀들은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는 것은 존재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소설 ‘단순한 진심’ 속의 많은 장면이 ‘이름’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저는 책의 주인공인 ‘문주’라는 이름과 ‘문주’의 태중 아이인 ‘우주’라는 이름을 좋아합니다. ‘문주’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문기둥이고, 두 번째는 먼지입니다. 이름에 먼지의 의미를 담는 이는 아마도 없겠지만, 입양아인 문주는 자신의 생명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지 못하기에, 부유하는 먼지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먼지’라고 여깁니다. 저 역시 ‘문기둥’의 의미보다 ‘먼지’가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문주’와 ‘우주’를 보며 애진이를 떠올립니다.
애진이와 저는 수다를 떨다가 가끔씩 사는 게 쉽지 않다고 투정을 부리곤 했습니다. “윤회도 고되다. 그치? 환생도 싫고, 죽으면 우주 먼지가 되면 좋겠다. 우주 먼지. 어때 쿨하지 않아?” 우린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한바탕 웃고 서로에게 윙크를 날리곤 했습니다. 애진이가 떠나고 나서야 ‘우주 먼지’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우주 먼지가 정말로 있는지, 있으면 어디에 있는데, 어떤 모양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 애진이는 어디에 있을까?’ ‘정말 우주 먼지가 되었을까’ ‘우주 먼지가 아니라 떠나보낼 때 모습 그대로 다시 만나야 하는데, 애진이는 도대체 어디 있을까’를 생각하며 우주 먼지를 찾아보았습니다. 별의 생성과 쇠퇴에 대해 알아보며, 우주 먼지가 생명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생명의 마지막, 그리고 시작이 먼지였구나. 우주 먼지는 어쩌면 생명의 근원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애진이는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 다시 나에게 올 수도 있겠다. 같은 모습이 아니더라도, 다시 만날 수 있겠다’란 바람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만나는 순간 애진이를 알아볼 수 있기를...’ 간절한 바람으로 우주 먼지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습니다. 우리 애진이를 만날 수 있는 단초, 우주 먼지, ‘우주’와 ‘먼지’는 ‘단순한 진심’의 주인공 이름입니다.
이름은 집이니까요. 서영의 두 번째 메일은 이렇게 시작했다.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 믿습니다. (17쪽)
저는 애진이 이름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스물 넷, 그리고 열흘이라는 짧은 생이었지만, 애진이가 다녀갔다는 것을 세상 어딘가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서영이의 두 번째 메일의 내용은 제 가슴에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 믿습니다.’ (17쪽)
우리 애진이는 사회적참사로 하루아침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고, 세상은 애진이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며 호적에서 이름을 지웠습니다, 애진이가 떠나고 하루에 하나씩 애진이가 사라지는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서류에서 애진이 이름을 하나씩 지우며, 세상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습니다. 더 이상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낼 수 없는 우리 애진이는 기억 속에, 마음 속에 추억으로 남는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이렇게 더 시간이 지나면 흐릿한 기억만 남게 되지 않을까, 무섭고 두려웠던 제게 사라진 이들에 대해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예의라는 이 문장은 너무나 고맙고 소중한 이야기였습니다. 작가님은 어찌 알았을까요.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가장 비참하고 두려운 것이 아이의 이름이 지워지고, 잊혀지는 것이라는 것을요. 어찌 알았을까요...
저는 아직도 애진이의 이름을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책방 언덕위에’라는 이름으로 애진이 이름을 새롭게 새길 준비를 합니다.

# 간절한 그리움을 안고 사는 사람, 추연희
복희식당의 주인 추연희는 복희를 벨기에로 입양 보내고 긴 시간을 그리워합니다, 추연희는 복희에게 매달 편지를 보내며 단 한 번만이라도 복희를 보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평생을 ‘복희’식당‘에서 보냅니다.
복희에게 그 식당은 직장이었고, 동시에 일생을 통과하여 당도한 혼자만의 거주지였다. 노동과 재산, 시간을 모두 쏟아부은 그 식당에 복희라는 이름을 새긴 행위도 살아 있다는 발신의 의미였을까. 복희가 살아있음. 내게는 복희지만, 공식적으로는 추연희인 그녀에게는 그 행위 자체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었던가. (129쪽)
아마도 죽기 전에 백복희를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염원을 품고... 연희의 직장이자 거주지였고, 존재의 증명이 되었던 복희 식당은 연희의 그 염원이 담긴 또 다른 의미의 편지였으리라. (188쪽)
입양아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는 문주를 보고 추연희는 복희를 떠올리며 복희를 향한 마음을 문주에게 쏟아냅니다. 추연희가 복희를 기다리는 마음은 결국 상실에 대한 애도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자의로 만든 상실이지만, 상실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은 추연희의 삶의 모습을 통해 저를 바라봅니다. 진상규명의 길 위에서, 애진이를 기억하고자 하는 저의 모습이 간절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은 추연희와 겹쳐집니다.
애도란 결국 떠난 이를 그리는 마음이지만, 살아있는 제가 상실을 수용하고 슬픔을 어루만지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길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추연희가 혼혈아인 복희를 입양 보내고, 평생을 기다리는 모습이 떠난 애진이를 그리며 살아가는 저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복희를 기다리는 추연희의 마음, 애진이를 기다리는 저의 마음. 추연희의 상실과 저의 상실은, 상실의 종류는 달라도 사랑하는 이를 곁에서 볼 수 없다는 것, 내가 보고 싶을 때, 그리울 때 볼 수 없고, 안을 수 없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고, 아무리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그리움과 마음을 직접 전할 수 없다는 것, 그 마음은 같습니다. 추연희의 간절한 기다림에서 저를 만나게 됩니다.
이제 내게 추연희라는 이름은 복희식당에서 노동하던 노년의 여성만을 지칭하지 않았다. 상실하면서도 꿈을 꾸던, 상처 받았으면서도 그 상처가 다른 이의 삶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애를 썼던 너무도 구체적인 한 인간이었다. 추연희 1948년생. 백복희의 둘째 엄마..... (175쪽)
#단순한 진심, 사랑
복희를 만나고 싶어 했던 추연희의 간절한 마음은 결국 사랑입니다.
남편이 떠난 후 그를 그리워하는 리사의 슬픔 역시 사랑입니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생모를 그리는 문주의 마음 역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의든, 타의든 상실한 사람들이 갖는 그리움은 결국 사랑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단순한 마음은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애진이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 역시 사랑이고
애진이 동생인 재원이가 질곡 없이 생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역시 사랑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본질은 함께한 이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입니다.
‘단순한 진심’에 매혹되어 눈을 떼지 못하고 읽어 내려갔던 이유는 바로 존재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문주’라는 입양아 이야기로 그리움과 사랑을 풀어내지만, 바닥에 흐르고 있는 생명에 대한 사랑, 죽음과 삶에 대한 성찰, 섬세하게 써 내려간 사람들의 감정의 묘사들이 저 대신 제 마음을 읽어주었습니다. 세상에서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정의 내리는 일일 것입니다. 극심한 혼란의 시기에는 더욱더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렵습니다. 제가 너무나 힘들었던 시기에 저의 마음을 직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독여준 ‘단순한 진심’의 문주와 추연희에게 감사합니다. 더불어 조해진 작가님에게 감사드립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기억공간–159별들-신애진 이야기
📝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신애진님의 엄마 김남희
📚 이달의 책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책'은 재난참사피해자가 또 다른 재난참사피해자에게 건네는 책으로써의 위로이자, 읽고 쓰기를 혼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상실 이후를 함께 나누는 장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회복 불가능한 시간을 책으로 겪어내는 이들에게 이달의 책이 잠시라도 숨 쉴 구멍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단순한 진심
#프롤로그
긴 겨울을 지나가고 있다. 3월이 되고 4월이 되어도 봄은 오지 않는다. 믿었던, 믿고 싶었던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는 지지부진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꾸려진 합동수사팀은 참사 직후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가 잘 되었다고 말했다. 그때 난 특수본에게서 ‘군중유체화’가 사망의 원인이라고 쓰여진 보고서를 달랑 받았을 뿐이었다. 군중유체화는 현상이지 원인이 될 수 없다. 부작위로 일관한 공무원들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희생자들이 서로의 무게로 서로를 질식케 했다며 희생자들에게 참사의 책임을 뒤집어씌운 게 잘된 수사였다니, 부관참시를 당하는 듯하다.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진실은 계절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더디기만 한 진상규명의 길 위에서 접한 어느 간담회에서 난 울며 이야기했다.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그저 진상규명. 그 한 가지입니다. 유가족의 마음이 보이지 않으신가요?” 나의 겨울은 깜깜하고 시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분노, 좌절, 슬픔이 마음 속에서 마그마로 끓어올랐다. 다시 우울증약을 먹기 시작했다.
특조위 면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단순한 진심’을 떠올렸다. ‘나의 진심은 무엇일까’, ‘진심은 단순해지는 건가’. 제목은 단순한데, 생각은 복잡해져만 갔다. ‘단순한 진심’은 내가 좋아하는 조해진 작가의 소설이다.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조해진 작가의 ‘단순한 진심’이 지금도 내 머릿속 어딘가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애진이를 보내고 맞은 첫 겨울의 어느 밤에 ‘단순한 진심’을 만났다. 문장을 삼킬 때마다 눈물이 쏟아졌다. 작가 또한 눈물을 삼키며 문장을 쏟아냈으리라 생각하니, 차마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넋 놓고 울기만 했다. 책을 읽다 우는 건지 울고 싶어 읽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왜 그리도 눈물이 났을까. 책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다 나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문주의 마음, 추연희의 마음 그리고 리사의 마음, 그리고 이름 모를 노파의 마음까지, 한 줄 한 줄의 문장이 다 나의 마음이었다. 가끔씩 책의 문장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심장에 꽂히는 날이 있다. 오늘 같은 날.
“죽는 건 하나도 안 가여워. 사는 게, 살아 있다는 게 지랄맞은 거지....” (152쪽)
오늘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이름 모를 노파의 읊조림이 생각난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복희가 웃었다. 웃을 때 복희는 더 이상 외로움과 분노를 체득한 노년의 표본 같지 않았지만, 대신 쓸쓸해 보였다. 끊임없이 내벽에 상처를 덧내며 시간과 함께 공처럼 굴려 왔을 어떤 마음이 인간의 얼굴로 빚어진다면 꼭 그녀 같지 않을까. (70쪽)
오늘 내 얼굴이 복희와 같지 않을까. 끊임없는 내벽에 상처를 덧내며 시간과 함께 굴러가는 쓸쓸한 얼굴. 살아있는 게 지랄맞다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내 얼굴이 복희의 얼굴일 것만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단순한 진심’의 인물들이 살아나 내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것 같다. 상처를 덧내며 기다림으로, 그리움으로, 사랑으로 꾸역꾸역 삶을 살아가는 마음. 아픈 복희(추연희)와 이름 모를 노파가 나와 함께 걸어준다. 그들의 그림자가 조용히 내 그림자를 따라온다.
우울한 발걸음으로 집을 향하며 ‘단순한 진심’을 다시 읽어야지, 맘을 먹는다. 이렇게 우울한 날에는 이 책이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 줄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단순한 진심’을 손에 들었다.
# 이름, 새로 태어난 생명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첫 번째 말
사람에게 쓸모가 없는 잡초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저 잡초일 뿐입니다. 사람에게 이롭고, 관계를 맺는 풀들은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는 것은 존재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소설 ‘단순한 진심’ 속의 많은 장면이 ‘이름’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저는 책의 주인공인 ‘문주’라는 이름과 ‘문주’의 태중 아이인 ‘우주’라는 이름을 좋아합니다. ‘문주’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문기둥이고, 두 번째는 먼지입니다. 이름에 먼지의 의미를 담는 이는 아마도 없겠지만, 입양아인 문주는 자신의 생명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지 못하기에, 부유하는 먼지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먼지’라고 여깁니다. 저 역시 ‘문기둥’의 의미보다 ‘먼지’가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문주’와 ‘우주’를 보며 애진이를 떠올립니다.
애진이와 저는 수다를 떨다가 가끔씩 사는 게 쉽지 않다고 투정을 부리곤 했습니다. “윤회도 고되다. 그치? 환생도 싫고, 죽으면 우주 먼지가 되면 좋겠다. 우주 먼지. 어때 쿨하지 않아?” 우린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한바탕 웃고 서로에게 윙크를 날리곤 했습니다. 애진이가 떠나고 나서야 ‘우주 먼지’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우주 먼지가 정말로 있는지, 있으면 어디에 있는데, 어떤 모양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 애진이는 어디에 있을까?’ ‘정말 우주 먼지가 되었을까’ ‘우주 먼지가 아니라 떠나보낼 때 모습 그대로 다시 만나야 하는데, 애진이는 도대체 어디 있을까’를 생각하며 우주 먼지를 찾아보았습니다. 별의 생성과 쇠퇴에 대해 알아보며, 우주 먼지가 생명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생명의 마지막, 그리고 시작이 먼지였구나. 우주 먼지는 어쩌면 생명의 근원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애진이는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 다시 나에게 올 수도 있겠다. 같은 모습이 아니더라도, 다시 만날 수 있겠다’란 바람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만나는 순간 애진이를 알아볼 수 있기를...’ 간절한 바람으로 우주 먼지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습니다. 우리 애진이를 만날 수 있는 단초, 우주 먼지, ‘우주’와 ‘먼지’는 ‘단순한 진심’의 주인공 이름입니다.
이름은 집이니까요. 서영의 두 번째 메일은 이렇게 시작했다.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 믿습니다. (17쪽)
저는 애진이 이름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스물 넷, 그리고 열흘이라는 짧은 생이었지만, 애진이가 다녀갔다는 것을 세상 어딘가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서영이의 두 번째 메일의 내용은 제 가슴에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 믿습니다.’ (17쪽)
우리 애진이는 사회적참사로 하루아침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고, 세상은 애진이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며 호적에서 이름을 지웠습니다, 애진이가 떠나고 하루에 하나씩 애진이가 사라지는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서류에서 애진이 이름을 하나씩 지우며, 세상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습니다. 더 이상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낼 수 없는 우리 애진이는 기억 속에, 마음 속에 추억으로 남는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이렇게 더 시간이 지나면 흐릿한 기억만 남게 되지 않을까, 무섭고 두려웠던 제게 사라진 이들에 대해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예의라는 이 문장은 너무나 고맙고 소중한 이야기였습니다. 작가님은 어찌 알았을까요.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가장 비참하고 두려운 것이 아이의 이름이 지워지고, 잊혀지는 것이라는 것을요. 어찌 알았을까요...
저는 아직도 애진이의 이름을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책방 언덕위에’라는 이름으로 애진이 이름을 새롭게 새길 준비를 합니다.
# 간절한 그리움을 안고 사는 사람, 추연희
복희식당의 주인 추연희는 복희를 벨기에로 입양 보내고 긴 시간을 그리워합니다, 추연희는 복희에게 매달 편지를 보내며 단 한 번만이라도 복희를 보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평생을 ‘복희’식당‘에서 보냅니다.
복희에게 그 식당은 직장이었고, 동시에 일생을 통과하여 당도한 혼자만의 거주지였다. 노동과 재산, 시간을 모두 쏟아부은 그 식당에 복희라는 이름을 새긴 행위도 살아 있다는 발신의 의미였을까. 복희가 살아있음. 내게는 복희지만, 공식적으로는 추연희인 그녀에게는 그 행위 자체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었던가. (129쪽)
아마도 죽기 전에 백복희를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염원을 품고... 연희의 직장이자 거주지였고, 존재의 증명이 되었던 복희 식당은 연희의 그 염원이 담긴 또 다른 의미의 편지였으리라. (188쪽)
입양아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는 문주를 보고 추연희는 복희를 떠올리며 복희를 향한 마음을 문주에게 쏟아냅니다. 추연희가 복희를 기다리는 마음은 결국 상실에 대한 애도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자의로 만든 상실이지만, 상실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은 추연희의 삶의 모습을 통해 저를 바라봅니다. 진상규명의 길 위에서, 애진이를 기억하고자 하는 저의 모습이 간절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은 추연희와 겹쳐집니다.
애도란 결국 떠난 이를 그리는 마음이지만, 살아있는 제가 상실을 수용하고 슬픔을 어루만지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길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추연희가 혼혈아인 복희를 입양 보내고, 평생을 기다리는 모습이 떠난 애진이를 그리며 살아가는 저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복희를 기다리는 추연희의 마음, 애진이를 기다리는 저의 마음. 추연희의 상실과 저의 상실은, 상실의 종류는 달라도 사랑하는 이를 곁에서 볼 수 없다는 것, 내가 보고 싶을 때, 그리울 때 볼 수 없고, 안을 수 없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고, 아무리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그리움과 마음을 직접 전할 수 없다는 것, 그 마음은 같습니다. 추연희의 간절한 기다림에서 저를 만나게 됩니다.
이제 내게 추연희라는 이름은 복희식당에서 노동하던 노년의 여성만을 지칭하지 않았다. 상실하면서도 꿈을 꾸던, 상처 받았으면서도 그 상처가 다른 이의 삶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애를 썼던 너무도 구체적인 한 인간이었다. 추연희 1948년생. 백복희의 둘째 엄마..... (175쪽)
#단순한 진심, 사랑
복희를 만나고 싶어 했던 추연희의 간절한 마음은 결국 사랑입니다.
남편이 떠난 후 그를 그리워하는 리사의 슬픔 역시 사랑입니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생모를 그리는 문주의 마음 역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의든, 타의든 상실한 사람들이 갖는 그리움은 결국 사랑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단순한 마음은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애진이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 역시 사랑이고
애진이 동생인 재원이가 질곡 없이 생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역시 사랑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본질은 함께한 이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입니다.
‘단순한 진심’에 매혹되어 눈을 떼지 못하고 읽어 내려갔던 이유는 바로 존재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문주’라는 입양아 이야기로 그리움과 사랑을 풀어내지만, 바닥에 흐르고 있는 생명에 대한 사랑, 죽음과 삶에 대한 성찰, 섬세하게 써 내려간 사람들의 감정의 묘사들이 저 대신 제 마음을 읽어주었습니다. 세상에서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정의 내리는 일일 것입니다. 극심한 혼란의 시기에는 더욱더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렵습니다. 제가 너무나 힘들었던 시기에 저의 마음을 직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독여준 ‘단순한 진심’의 문주와 추연희에게 감사합니다. 더불어 조해진 작가님에게 감사드립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기억공간–159별들-신애진 이야기
📝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신애진님의 엄마 김남희
📚 이달의 책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책'은 재난참사피해자가 또 다른 재난참사피해자에게 건네는 책으로써의 위로이자, 읽고 쓰기를 혼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상실 이후를 함께 나누는 장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회복 불가능한 시간을 책으로 겪어내는 이들에게 이달의 책이 잠시라도 숨 쉴 구멍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