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과 사랑의 기억이, 삶을 살아내게 합니다
지난달 11월 2일 안산의 4.16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매달 첫 주에 드리는 4.16예배가 있었다. 2018년 4월 ‘4.16 세월호참사 정부합동분향소’가 철거된 후 분향소 예배 부스에서의 모임을 정리하고, 바로 5월부터 지금의 장소에서 시작하여 꼭 7년 6개월을 이어온 예배였다. 4.16생명안전공원의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어 지금 장소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였다.
2018년 5월 첫 예배를 준비하며 수시로 변하는 날씨에, 가림막 하나 없는 이곳에, 과연 누가 예배를 드리러 올 까 걱정이 되었었다. 풀을 깎고 노란 의자를 깔고 테이블에 나무 십자가를 놓고 사람들을 기다리며 앉으니 저 멀리 단원고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으로 풀숲과 나무가 어우러진 4.16생명안전공원 부지가 보였다. 풍경만으로도 위로가 되었고 앞으로 세워질 4.16생명안전공원에 대한 희망도 생겼다. 그리고 사람들이 달이 바뀔수록 해가 넘어갈수록 점점 더 모이기 시작했다.

예배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적게는 40~50명 많게는 200~300명이 되었다. 우리는 긴 시간이 흘러도 계속 기억하고 찾아와 주는 이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이렇게까지 함께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2022년 가을, 예배팀 조선재님의 제안으로 초기부터 함께해 온 분들과 유가족들의 글을 모아 책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런데 글을 모으고 중에 10월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글을 의뢰받은 모든 사람이 큰 충격에 빠졌다. 8년의 싸움의 노력을 도둑 당한 느낌이었다. 다시 2014년으로 소환되어 그때 바다의 풍경을 고스란히 이태원의 골목으로 옮겨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많은 분들이 글을 수정하거나 포기했다. 그리고 2023년 책이 나왔다.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은 고통의 기억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기억입니다. 그 기억을 간직해야만, 나날이 되살려야만,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너머 부활의 삶을 살 수 있지요. (중략) 아이들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고통의 기억으로 우리도 하나가 되고, 사랑의 기억으로 우리가 살아내야 할 삶을 결코 놓지 않은 채 살아갑니다. (23쪽 조민아님 글)”

이태원참사를 목도하며 괴롭고 힘들었지만, 받은 글들을 읽으며 4.16세월호 참사 이후의 마음들을 다시 되짚어 보았다. 고통을 잊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기억하며 함께해 온 이들의 길은 옳은 길이었다. 고통에 대한 기억은 우리에게 다른 힘들을 키워주었다.
“죽은 듯 보이지만 새 생명을 잉태할 힘을 하늘은 우리에게 주었다. 말라 죽지 않도록 온도와 습도를 맞춰가며 우리의 생명력을 키워가자. 이런 그루터기 신앙만이 10.29 유족들을 품고 위로 할 수 있는 자산이라 생각한다. (52쪽 이정배님 글)”
참사를 겪으며 유가족들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사회를 보는 눈도 가치관도 삶의 목표도 바뀌었다. 부모들은 자주 말한다. “우리 애를 잃고 세상을 제대로 보게 되었어. 그리고 싸우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을 내가 해냈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참사는 유가족 뿐 아니라 함께 하는 이들의 변화도 가져왔음을 보게 되었다. 참사를 겪으며 그들은 끊임없이 질문했고 신앙은 더 깊고 넓어졌다. 그리고 같은 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위로와 힘을 얻었다.

11월 2일 4.16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의 마지막 예배에는 추운 날씨에도 100명이 넘는 분들이 함께해주셨다. 명절이나 날씨가 안 좋은 날이면 인원이 적을 까봐 오히려 더 많은 분들이 오곤 해서 간식이 부족해 그때마다 서로 쳐다보며 웃었는데 이번에도 그 마음이 통했다. 광풍 급의 바람이 불었지만 우리는 둥글게 서서 기도했다. 나도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이 공간을 통해 바람으로, 햇살로, 새 소리로, 나무 그늘로 찾아와 준 모든 영혼들과 신에게 감사합니다. 고통의 기억으로만 끝나지 않게 하시고 사랑의 기억을 채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느 간담회에서 내가 “4.16 세월호참사를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했더니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4.16 세월호참사는 잊지 않는 게 아니라 잊을래야 잊을 수 없어요.”
모든 재난 피해자와의 약속도 그러하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약속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그들과의 약속이다. 고통의 기억과 함께 연대하는 이들과의 사랑은 우리를 약속으로, 삶을 살아내는 길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 박은희.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단원고 2학년3반 유예은님의 엄마.
4.16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며 예은이가 노래를 좋아한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는 부족한 엄마,
기억이라면 그리스도인이 제일이라는 생각에 2015년부터 지금까지 4.16 예배와 기도회를 끈질기게 쉬지 않고 이어온 4.16예배팀의 한 사람.
사진 설명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사진1. 멀리 단원고 보이는 416생명안전공원부지 풍경
사진2. 『포기할 수 었는 약속』 책 표지
사진3. 예배 사회자석 풍경
사진4. 2025년 11월 2일 예배사진_현장소에서의 마지막 예배 기념사진
● 이달의 책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책'은 재난참사피해자가 또 다른 재난참사피해자에게 건네는 책으로써의 위로이자, 읽고 쓰기를 혼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상실 이후를 함께 나누는 장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회복 불가능한 시간을 책으로 겪어내는 이들에게 이달의 책이 잠시라도 숨 쉴 구멍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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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사랑의 기억이, 삶을 살아내게 합니다
지난달 11월 2일 안산의 4.16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매달 첫 주에 드리는 4.16예배가 있었다. 2018년 4월 ‘4.16 세월호참사 정부합동분향소’가 철거된 후 분향소 예배 부스에서의 모임을 정리하고, 바로 5월부터 지금의 장소에서 시작하여 꼭 7년 6개월을 이어온 예배였다. 4.16생명안전공원의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어 지금 장소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였다.
2018년 5월 첫 예배를 준비하며 수시로 변하는 날씨에, 가림막 하나 없는 이곳에, 과연 누가 예배를 드리러 올 까 걱정이 되었었다. 풀을 깎고 노란 의자를 깔고 테이블에 나무 십자가를 놓고 사람들을 기다리며 앉으니 저 멀리 단원고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으로 풀숲과 나무가 어우러진 4.16생명안전공원 부지가 보였다. 풍경만으로도 위로가 되었고 앞으로 세워질 4.16생명안전공원에 대한 희망도 생겼다. 그리고 사람들이 달이 바뀔수록 해가 넘어갈수록 점점 더 모이기 시작했다.
예배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적게는 40~50명 많게는 200~300명이 되었다. 우리는 긴 시간이 흘러도 계속 기억하고 찾아와 주는 이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이렇게까지 함께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2022년 가을, 예배팀 조선재님의 제안으로 초기부터 함께해 온 분들과 유가족들의 글을 모아 책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런데 글을 모으고 중에 10월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글을 의뢰받은 모든 사람이 큰 충격에 빠졌다. 8년의 싸움의 노력을 도둑 당한 느낌이었다. 다시 2014년으로 소환되어 그때 바다의 풍경을 고스란히 이태원의 골목으로 옮겨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많은 분들이 글을 수정하거나 포기했다. 그리고 2023년 책이 나왔다.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은 고통의 기억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기억입니다. 그 기억을 간직해야만, 나날이 되살려야만,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너머 부활의 삶을 살 수 있지요. (중략) 아이들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고통의 기억으로 우리도 하나가 되고, 사랑의 기억으로 우리가 살아내야 할 삶을 결코 놓지 않은 채 살아갑니다. (23쪽 조민아님 글)”
이태원참사를 목도하며 괴롭고 힘들었지만, 받은 글들을 읽으며 4.16세월호 참사 이후의 마음들을 다시 되짚어 보았다. 고통을 잊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기억하며 함께해 온 이들의 길은 옳은 길이었다. 고통에 대한 기억은 우리에게 다른 힘들을 키워주었다.
“죽은 듯 보이지만 새 생명을 잉태할 힘을 하늘은 우리에게 주었다. 말라 죽지 않도록 온도와 습도를 맞춰가며 우리의 생명력을 키워가자. 이런 그루터기 신앙만이 10.29 유족들을 품고 위로 할 수 있는 자산이라 생각한다. (52쪽 이정배님 글)”
참사를 겪으며 유가족들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사회를 보는 눈도 가치관도 삶의 목표도 바뀌었다. 부모들은 자주 말한다. “우리 애를 잃고 세상을 제대로 보게 되었어. 그리고 싸우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을 내가 해냈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참사는 유가족 뿐 아니라 함께 하는 이들의 변화도 가져왔음을 보게 되었다. 참사를 겪으며 그들은 끊임없이 질문했고 신앙은 더 깊고 넓어졌다. 그리고 같은 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위로와 힘을 얻었다.
11월 2일 4.16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의 마지막 예배에는 추운 날씨에도 100명이 넘는 분들이 함께해주셨다. 명절이나 날씨가 안 좋은 날이면 인원이 적을 까봐 오히려 더 많은 분들이 오곤 해서 간식이 부족해 그때마다 서로 쳐다보며 웃었는데 이번에도 그 마음이 통했다. 광풍 급의 바람이 불었지만 우리는 둥글게 서서 기도했다. 나도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이 공간을 통해 바람으로, 햇살로, 새 소리로, 나무 그늘로 찾아와 준 모든 영혼들과 신에게 감사합니다. 고통의 기억으로만 끝나지 않게 하시고 사랑의 기억을 채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느 간담회에서 내가 “4.16 세월호참사를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했더니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4.16 세월호참사는 잊지 않는 게 아니라 잊을래야 잊을 수 없어요.”
모든 재난 피해자와의 약속도 그러하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약속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그들과의 약속이다. 고통의 기억과 함께 연대하는 이들과의 사랑은 우리를 약속으로, 삶을 살아내는 길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 박은희.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단원고 2학년3반 유예은님의 엄마.
4.16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며 예은이가 노래를 좋아한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는 부족한 엄마,
기억이라면 그리스도인이 제일이라는 생각에 2015년부터 지금까지 4.16 예배와 기도회를 끈질기게 쉬지 않고 이어온 4.16예배팀의 한 사람.
사진 설명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사진1. 멀리 단원고 보이는 416생명안전공원부지 풍경
사진2. 『포기할 수 었는 약속』 책 표지
사진3. 예배 사회자석 풍경
사진4. 2025년 11월 2일 예배사진_현장소에서의 마지막 예배 기념사진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책'은 재난참사피해자가 또 다른 재난참사피해자에게 건네는 책으로써의 위로이자, 읽고 쓰기를 혼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상실 이후를 함께 나누는 장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회복 불가능한 시간을 책으로 겪어내는 이들에게 이달의 책이 잠시라도 숨 쉴 구멍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