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특별한 날은 특별히 아프다 -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신애진님의 엄마, 김남희

2025-10-01




특별한 날은 특별히 아프다



“생각보다 좋아 보여 다행이다”

내가 이태원참사로 아이를 잃은 유가족이란 걸 아는 지인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생각보다 좋아 보인다는 말 앞에 나는 더 이상 나를 드러내지 못한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시간이 지났으니까”라고 이야기하고는 희미하게 웃는다. ‘생각보다’라는 말에는, 사람들이 유가족에 대해 갖는 일반적인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다.

 

아무도 살아가면서 자신이 재난참사 희생자가 되거나 유가족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않는다. 나 역시 내가 재난 참사의 한가운데 서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우연히 닥친 참사로 아무 잘못도 없이 애진이는 희생되었고, 난 딸을 잃었다. 폐허처럼 허물어진 삶이 유가족에겐 어떤 모습일까.


애진이 없이 맞이한 첫 번째 내 생일, 하루 종일 울기만 했다. 아침 산책길엔 인적이 없는 곳에서 울었다. 밥을 씹는 게 서러워 울었다. 방에서 혼자 꺼이꺼이 울었다. 늘 듣던 음악 소리에 맞춰 울었다. 내가 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걸 잃어본 적이 처음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가장 축복받고 싶은 이의 축하를 받지 못해서였을까. 생각도 힘이 드니 오래 할 수가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생일이란 낱말에 ‘생(生)’자가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애진이 없이 살아내야 하는 ‘생’은 참 어려운 숙제다.


언젠가 신문에서 유가족의 삶을 다룬 “잃어버린 너, 잃어버린 나”라는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재난 참사로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는 자신의 삶조차 잃어버려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진상규명을 위해 삶을 바친다는 이야기였다. 재난으로 자녀를 잃은 부모는 선택이 아닌 불가피한 상황에 빠져들어서는 과거에 매몰되어, 일상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삶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분명 자신이 선택한 삶이다. 자녀를 잃었다 해서 모두가 자신의 일상을 뒤로 하고 사회적 의미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돌아갈 일상이 있었지만, 자신의 판단과 의지로 그 길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가 밝히고자 하는 진실은 과거가 된 그날의 구체적인 행위에 함몰되지 않는다. 그날의 진실이 참사로 무너진 세상을 바로 세우는 첫 단추이기에 그날을 건너뛸 수 없는 것이다.

 

‘특별한 날은 특별히 아프다’는 이태원 참사로 딸을 떠나보낸 아빠의 일기를 모티프로 재구성한 수필집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애진이의 아빠이자 내 남편이다. 애진 아빠는 애진이가 떠난 다음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쓴다. 애진이를 향한 감정과 생각, 어느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온전히 남기고자 함이라 한다. 애진이를 향한 마음, 애진이에게서 비롯된 인연, 공감하고 연대해주신 이들의 이야기를 매일매일 일기에 담았고, 참사 이후 1년간의 이야기를 모아 ‘특별한 날은 특별히 아프다’라는 책에 담았다.


애진이가 살았다면 더 이루었을 의미를 내가 함께 이루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나는 애진이의 의미를 빚어 나가는 또 다른 애진이다.

널 찾아가는 길이 내 삶의 길이다. 너의 의미를 찾으러 아빠가 간다.


언젠가부터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면 마음속으로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한다. 잘못도 없이 제 삶을 다하지 못하고 떠난 희생자를 기억하겠다는 다짐은 우리 애진이를 잊지 않겠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고, 두 번 다시 재난참사로 생을 빼앗기는 이들이 없도록 노력하겠다는 나의 다짐이다. 참사를 기억하는 것, 희생된 이들을 호명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 더 이상 남겨진 가족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다.


다가오는 10월 29일은 이태원 참사 3주기이자, 애진이의 기일이다. ‘특별한 날은 특별히 아프다’가 아픔을 간직한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작가는 “내 슬픔이 다른 이의 슬픔에 손을 내밀 때, 내 슬픔의 크기는 그대로여도 고통은 견딜 수 있을 만큼 줄어든다.”고 고백한다. 

위로를 나눌 수 있는 사회는 우리 헌법에 명시된 ‘생명과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일 거라고, 아빠의 입으로 애진이가 말하는 듯하다.

우리가 지향하는 안전사회, 생명사회는 애진이의 희생이 의미를 갖게 되는 길이다. 내딛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까닭이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협의회 홈페이지 [기억공간-159별들-신애진]

https://1029itaewonfamily.org/159-stars/?q=YToy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Q6InBhZ2UiO2k6Mjt9&bmode=view&idx=122623336&t=board

 

애진이를 사랑하는 이들이 전하는 마음

https://www.groupgreeting.com/sign/b2bea6bbc932dcd [친구들의 추모편지]

https://youtu.be/ItHUmzCmQao?si=mK83cgKK2lAwM9xQ [애진이 추모곡 '편지']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신애진님의 엄마 김남희



● 이달의 책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책'은 재난참사피해자가 또 다른 재난참사피해자에게 건네는 책으로써의 위로이자, 읽고 쓰기를 혼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상실 이후를 함께 나누는 장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회복 불가능한 시간을 책으로 겪어내는 이들에게 이달의 책이 잠시라도 숨 쉴 구멍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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