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더 나는 사회로 가기 위한 단단한 뿌리, 기억의 공간 -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단원고 2학년3반 유예은님의 엄마, 박은희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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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는 사회로 가기 위한 단단한 뿌리, 기억의 공간


2016년을 넘어 2017년으로 가는 시간에 우리는 모두 뜨거웠습니다. 무능하고 무책임했던 지도자의 파면을 외치며 매서운 추위에도 매주 광화문 광장에 모였습니다. 어렵게 시작한 특조위가 기간을 못 채우고 정부와 당시 여당인 현 ‘국민의 힘’당의 방해로 2016년 여름 해산되었기에 4.16 유가족은 더 열심히 집회에 참여해 행진의 맨 앞자리를 지켰습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었지만, 탄핵 사유에 세월호참사에 대한 책임 부분이 들어가지 않아 가족들은 크게 낙심했습니다. 2014년부터 쉬지 않고 길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망가진 몸들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습니다. 저도 2월 한 달 내 내 먹는 것마다 토해냈습니다. 마치 이 세상을 향해 참아 온 화를 온몸으로 분출해 내는 것 같았습니다. ‘살 이유가 있냐’고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보니 남은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마음 속으로 ‘그래도 너희는 살아 있잖아’ 모진 말을 하고, 평소 먹이지 않던 인스턴트 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게 했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2017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도 해서 조금의 여유를 부려 서울로 1박 2일 여름 휴가를 갔습니다. 농성장 근처에 숙소를 잡고 평소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던 곳을 갔는데 처음에 간 곳이 이태원이었습니다. 젊은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 이태원을 아이들과 함께 처음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녁 식사 전 시원한 곳을 찾다가 들른 블루스퀘어 대형 서점에서 반가운 책을 발견했습니다. 2017년 봄에 출간된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라는 책이었습니다. 부제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세월호 추모관까지’라고 쓰여 있고, 평소 4.16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자주 안산을 찾는 ‘새길 기독사회문화원’의 건축탐방 이야기라고 소개되어 있어 바로 구입해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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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김명식 저, 뜨인돌(2017)



책 시작 부분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개인/ 움직이지 않는 지성/ 각성하지 않는 사회/ 곪아가는 공동체 의식/ 슬픔을 기억하지 못하는 공간/ 아픔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사회/ 고통의 기억이 물질화되기 힘든 건축/ 비극을 지우려는 도시/ 시각적 유희를 좇는 물질 문화.......

우리는 지금 인문주의의 일몰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참사 직후 2014년 가을,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박상은 저. 사회운동. 2014)”를 읽으며 수많은 참사의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함께 애도하고 기억할 공간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4.16 세월호참사 만큼은 기억 되어지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는 선례를 남기기 위해 단순한 추모 공간 이상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해 책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는 많은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4장 ‘도시의 건축: 사회적 고통과 기억의 공간’ 부분에서 ‘유럽의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를 소개하며 저자는 다음의 글을 인용합니다.

“약 600만 명의 유대인 희생자에게 헌정되는 기념비 건설은 가해자인 독일의 국가사회주의자들과 그들로부터 박해받은 피해자들 간의 화해를 위한 시도 중 하나입니다. 이 기념비는 홀로코스트의 잔인했던 역사를 분명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독일의 끔찍한 범죄의 기억을 유지시키는 것이고, 그것을 독일의 역사 속에 단단히 고정시켜 뿌리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추모공간에서 우리는 만납니다. 괴롭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그 순간을 다시 마주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 희생된 이들을 만납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로하고 안아줍니다. 또 그때 아무것도 하지 못해 무거운 죄책감에 눌렸던 자신을 만납니다. 나를 위로합니다. 서로를 위로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남은 숙제를 끝까지 풀어나갈 약속을 합니다.

이렇게 아프지만 따뜻하고, 슬프지만 희망적인 공간을 통해, 참사는 역사 속에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4.16생명안전공원(가칭)의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참사 추모시설이 눈에 잘 띄지 않고 접근이 어려운 곳이지만, 4.16생명안전공원(가칭)은 역세권 안에 있으며, 단원고가 보이고, 평소 아이들이 자주 찾아와 놀던 공원 옆에 세워집니다.

이제는 참사를 지우고 가려야 하는 역사가 아니라,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야할 역사로 만드는 세상이 되기를, 그 길을 4.16 세월호 참사가 잘 열어가기를 모두 함께 기원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박은희.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단원고 2학년3반 유예은님의 엄마. 

4.16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며 예은이가 노래를 좋아한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는 부족한 엄마,
기억이라면 그리스도인이 제일이라는 생각에 2015년부터 지금까지 4.16 예배와 기도회를 끈질기게 쉬지 않고 이어온 4.16예배팀의 한 사람.



  이달의 책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책'은 재난참사피해자가 또 다른 재난참사피해자에게 건네는 책으로써의 위로이자, 읽고 쓰기를 혼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상실 이후를 함께 나누는 장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회복 불가능한 시간을 책으로 겪어내는 이들에게 이달의 책이 잠시라도 숨 쉴 구멍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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