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구경 다니고 싶다
작가 이자크 디네센은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딜 수가 있다고 했다. 밖으로 꺼내 놓지 못하는 슬픔이나 고통은 안에서 곪기 마련이니 문드러지기 전에 밖으로 꺼내 이야기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세월호참사 10주기를 지나며 많은 기록물들이 나왔다. 어느 책이 조금 덜 아프겠냐마는 아직도 미완인 세월호이기에 한 권 한 권 정신 차려 읽었다. 그러다 만난 세월호 유가족 수기집 『열 번의 봄이 진 자리』. 결국 나는 무너졌다. 책장을 넘길 수가 없어 책을 붙든 채 엉엉 울었다. 이렇게 울면서까지 나는 왜 이 책을 붙잡고 있는 걸까? 처음에 승묵 엄마(은인숙님) 글을 읽기 시작한 게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지난 가을. 세월호 승묵 엄마가 옆 마을에 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선뜻 연락을 하지 못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전화했더니 의외로 밝고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다(?) 싶었다. 이후 승묵이네와 우리집은 같이 점심도 먹고 산길도 걸었다. 텃밭의 호박, 가지, 오이도 서로 나누고 채송화, 천사의 나팔, 글라디올러스도 분양해 서로의 꽃밭을 채웠다. 뒤죽박죽 공허감에 외롭게 살고 있던 나는 매사 긍정적이고 쾌활한 승묵 엄마를 만나고 오면 슬픔과 절망의 시간을 조금씩 밀어낼 수 있었다. 막내 동생 뻘인데도 매사 언니처럼 넓게 안아주니 편했고 무척 부러웠다.


그런데 ‘다정한 너를 의지해 나는 오늘도 걷는다’ 속의 승묵 엄마는 송두리째 빼앗긴 삶을 움켜쥔 채 오로지 승묵이 곁으로 하루라도 빨리 가려는 절망감에 쌓였던 슬픈 엄마였다. 겉으로 표현을 안 했을 뿐이었다. 자식을 잃은 유가족 모두가 그렇듯이 승묵 엄마도 빛이 하나도 안 보이는 슬픔과 고통의 터널을 엄청 힘들게 버텨왔던 것이다. 가슴이 미어졌다. 너무나 가여워서 승묵 엄마가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 친 시간들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래. 나도 그랬다. 한빛이 없는 이 세상의 나는 한없이 가엾고 불쌍했다. 더 작아지고 싶은 명분이 필요했던 나는 핑계 김에 책을 가슴에 안고 목이 쉬도록 울었다. 휘청거릴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세월호 예은 아빠의 글이 떠올랐다. “비가 내리던 5월.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없이 수많은 참배객이 망월동 열사 묘역을 찾아오고 있었다. 묘역을 오가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한열 어머님이 ‘나도 구경 다니고 싶다.’ 하고 무심히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옆에 있던 활동가가 깜짝 놀라 ‘어머님, 저들은 구경하러 온 게 아니라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에요.’ 하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어머님은 ‘알제. 나도 알제. 그래도 나도 저그들처럼 구경 다니고 싶다.’ 하고 다시 한탄하셨다. 그 한탄이 나 자신의 한탄과 같아서 고개를 올려 먼 하늘만 쳐다봤다.” ‘나도 구경 다니고 싶다’는 말에 담겨 있는 그 미묘한 간극을 유가족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열 번의 봄이 진 자리』에 있는 세월호 엄마 아빠의 목소리들은 이렇게 가슴을 쳤기에 읽으며 울음을 토해내도 부끄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과의 공감과 연대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됐다. 현장 곳곳에서 만났던 얼굴을 떠올리며 한 장면 한 장면 가슴에 안고 읽었다. 쓰는 동안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얼마나 아이가 보고 싶었을까? 시간을 4월 16일 이전으로 단 1초라도 돌릴 수 있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을까? 아이를 기억하며 그리움을 글로 썼던 그 시간들이 위로와 치유의 시간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울러 별이 된 다정한 아이들을 의지해 파괴된 마음을 보듬으며 오늘도 살아갈 수 있도록 곁이 되어 준 안산온마음센터에도 감사드린다.

● 김혜영. tvN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PD님의 엄마.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곁에서 아들의 삶을 이어가려 애쓰고 있다.
사진 설명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사진1. 『열 번의 봄이 진 자리』 책표지.
사진2. 승묵이 어린 시절부터 데리고 다니며 만들었던 닥종이 인형 작품. 승묵이가 떠난 후 뭔가 하고 싶은 의지도 전혀 없었지만 인형 하나하나에 담긴 승묵이와의 추억이 생각나 중단한 닥종이 인형 만들기.
사진3. 꽃 압화. 투쟁 때 삭발했던 승묵 엄마 자화상.
사진4. 승묵엄마의 펠트 공예 작품.
사진5. 현재 안산마음건강센터에서 배우고 있는 승묵엄마의 유화 작품.
※ 사진 3,4,5 모두 치유를 위한 활동
● 이달의 책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책'은 재난참사피해자가 또 다른 재난참사피해자에게 건네는 책으로써의 위로이자, 읽고 쓰기를 혼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상실 이후를 함께 나누는 장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회복 불가능한 시간을 책으로 겪어내는 이들에게 이달의 책이 잠시라도 숨 쉴 구멍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나도 구경 다니고 싶다
작가 이자크 디네센은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딜 수가 있다고 했다. 밖으로 꺼내 놓지 못하는 슬픔이나 고통은 안에서 곪기 마련이니 문드러지기 전에 밖으로 꺼내 이야기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세월호참사 10주기를 지나며 많은 기록물들이 나왔다. 어느 책이 조금 덜 아프겠냐마는 아직도 미완인 세월호이기에 한 권 한 권 정신 차려 읽었다. 그러다 만난 세월호 유가족 수기집 『열 번의 봄이 진 자리』. 결국 나는 무너졌다. 책장을 넘길 수가 없어 책을 붙든 채 엉엉 울었다. 이렇게 울면서까지 나는 왜 이 책을 붙잡고 있는 걸까? 처음에 승묵 엄마(은인숙님) 글을 읽기 시작한 게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지난 가을. 세월호 승묵 엄마가 옆 마을에 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선뜻 연락을 하지 못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전화했더니 의외로 밝고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다(?) 싶었다. 이후 승묵이네와 우리집은 같이 점심도 먹고 산길도 걸었다. 텃밭의 호박, 가지, 오이도 서로 나누고 채송화, 천사의 나팔, 글라디올러스도 분양해 서로의 꽃밭을 채웠다. 뒤죽박죽 공허감에 외롭게 살고 있던 나는 매사 긍정적이고 쾌활한 승묵 엄마를 만나고 오면 슬픔과 절망의 시간을 조금씩 밀어낼 수 있었다. 막내 동생 뻘인데도 매사 언니처럼 넓게 안아주니 편했고 무척 부러웠다.
그런데 ‘다정한 너를 의지해 나는 오늘도 걷는다’ 속의 승묵 엄마는 송두리째 빼앗긴 삶을 움켜쥔 채 오로지 승묵이 곁으로 하루라도 빨리 가려는 절망감에 쌓였던 슬픈 엄마였다. 겉으로 표현을 안 했을 뿐이었다. 자식을 잃은 유가족 모두가 그렇듯이 승묵 엄마도 빛이 하나도 안 보이는 슬픔과 고통의 터널을 엄청 힘들게 버텨왔던 것이다. 가슴이 미어졌다. 너무나 가여워서 승묵 엄마가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 친 시간들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래. 나도 그랬다. 한빛이 없는 이 세상의 나는 한없이 가엾고 불쌍했다. 더 작아지고 싶은 명분이 필요했던 나는 핑계 김에 책을 가슴에 안고 목이 쉬도록 울었다. 휘청거릴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세월호 예은 아빠의 글이 떠올랐다. “비가 내리던 5월.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없이 수많은 참배객이 망월동 열사 묘역을 찾아오고 있었다. 묘역을 오가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한열 어머님이 ‘나도 구경 다니고 싶다.’ 하고 무심히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옆에 있던 활동가가 깜짝 놀라 ‘어머님, 저들은 구경하러 온 게 아니라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에요.’ 하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어머님은 ‘알제. 나도 알제. 그래도 나도 저그들처럼 구경 다니고 싶다.’ 하고 다시 한탄하셨다. 그 한탄이 나 자신의 한탄과 같아서 고개를 올려 먼 하늘만 쳐다봤다.” ‘나도 구경 다니고 싶다’는 말에 담겨 있는 그 미묘한 간극을 유가족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열 번의 봄이 진 자리』에 있는 세월호 엄마 아빠의 목소리들은 이렇게 가슴을 쳤기에 읽으며 울음을 토해내도 부끄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과의 공감과 연대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됐다. 현장 곳곳에서 만났던 얼굴을 떠올리며 한 장면 한 장면 가슴에 안고 읽었다. 쓰는 동안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얼마나 아이가 보고 싶었을까? 시간을 4월 16일 이전으로 단 1초라도 돌릴 수 있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을까? 아이를 기억하며 그리움을 글로 썼던 그 시간들이 위로와 치유의 시간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울러 별이 된 다정한 아이들을 의지해 파괴된 마음을 보듬으며 오늘도 살아갈 수 있도록 곁이 되어 준 안산온마음센터에도 감사드린다.
● 김혜영. tvN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PD님의 엄마.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곁에서 아들의 삶을 이어가려 애쓰고 있다.
사진 설명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사진1. 『열 번의 봄이 진 자리』 책표지.
사진2. 승묵이 어린 시절부터 데리고 다니며 만들었던 닥종이 인형 작품. 승묵이가 떠난 후 뭔가 하고 싶은 의지도 전혀 없었지만 인형 하나하나에 담긴 승묵이와의 추억이 생각나 중단한 닥종이 인형 만들기.
사진3. 꽃 압화. 투쟁 때 삭발했던 승묵 엄마 자화상.
사진4. 승묵엄마의 펠트 공예 작품.
사진5. 현재 안산마음건강센터에서 배우고 있는 승묵엄마의 유화 작품.
※ 사진 3,4,5 모두 치유를 위한 활동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책'은 재난참사피해자가 또 다른 재난참사피해자에게 건네는 책으로써의 위로이자, 읽고 쓰기를 혼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상실 이후를 함께 나누는 장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회복 불가능한 시간을 책으로 겪어내는 이들에게 이달의 책이 잠시라도 숨 쉴 구멍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