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4년…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판결이 남긴 질문(상)
2020년 12월, 정의당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통과를 촉구하며 국회 본청 내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정의당 원내대표였던 강은미 의원은 산업재해 사고 유가족들과 함께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위한 단식에 돌입했고, 2021년 1월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통과했습니다.
“그동안 계속된 처벌과 여러 대책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안전사고와 산업재해가 그치지 않았던 큰 이유는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개선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1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따른 이러한 산업안전 패러다임의 변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권한 있는 자에게 책임 묻기라고 할 수 있다.”2
중대재해처벌법은 개인사업주, 경영책임자 등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의무를 지웁니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기업이 안전한 노동 환경을 마련하도록 하여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23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
2024년 6월 24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가장 많은 노동자가 희생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입니다. 배터리 폭발 사고로 23명의 노동자가 숨졌고, 9명이 다쳤습니다. 사망한 23명의 노동자 중 20명이 파견노동자였고, 파견노동자 20명 중 18명이 이주노동자였습니다. 불이 완전히 진화되기까지 22시간이 걸린 이 화재 사고는 ‘아리셀’이라는 업체가 화재 위험성이 높은 리튬 배터리 제조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발생한 인재라는 점이 수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아리셀 박순관 대표, 박중언 총괄본부장을 비롯한 관련자 8명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상, 파견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기), 건축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2025년 9월 23일, 1심 재판부는 박순관 대표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선고된 가장 높은 형량이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던 기업이 산업재해 발생 이후 피해자와의 합의를 통해 감경받고, 또다시 안전을 소홀히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판결에 남겼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항소심 판결에서 백지화됐습니다. 지난 4월 22일,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 판결을 깨고 박 대표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습니다. 일부 유·무죄 판단이 달라졌고, 무엇보다도 ‘피해자와의 합의’를 양형(형량을 정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이 1심과 달랐습니다.
아리셀 판결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심 판결은 중대산업재해 사건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를 양형에 반영할 때 고려해야 할 지점을 짚었습니다. 기계적인 감경이 아닌, 법이 만들어진 사회적 배경, 엄중한 처벌이 갖는 예방적 효과 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항소심 판결의 경우 1심 판결이 양형과 관련해 남긴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점에서 한계가 존재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의 유·무죄 판단과 관련해 새로운 법리(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기준이나 논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두 판결의 의미를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배터리 폭발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공장 3동 건물.
‘돈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빠져나가는’
‘어떻게 양형을 판단할 것인가’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논의된 지점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법안 심사의 대상이 된 5개 중 4개3의 법안은 공통적으로 ‘유죄 인정 절차와 양형 절차를 분리하는’ 조항을 포함했습니다. 양형 심리를 위한 심문기일을 별도로 지정해 전문가와 피해자 등의 진술을 듣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국민의 시각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양형이 가능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지만, 기존 법 체계와의 충돌 가능성 등의 사유로 포함되지 않았습니다.4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존의 법으로는 처벌하기 어려웠던 기업의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 범주에 포함함으로써 기업이 산업재해를 예방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예방 효과를 가질 정도’의 ‘유의미한 처벌 가능성’이 중요 쟁점으로 다뤄졌습니다.
“법인이나 기업이 돈으로써 그냥 대가를 지불하고 빠져나갈 수 있다고 한다면 사실상 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가지는 실효적인 의미가 상당 부분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이 됩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2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라든지 아니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라든지 (형량의) 하한을 지켜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고요.”5
법이 시행되고 4년. 이러한 입법 취지가 법원의 판결을 거치며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2025년 12월, 대법원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 심포지엄에서 범선윤 판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 판결의 양형을 분석해 발표했습니다. 법이 시행된 2022년 1월부터 2025년 9월 사이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은 총 70명이었고, 그 중 실형을 받은 사람은 6명(8.57%)에 불과했습니다.6 형량도 6개월에서 3년 사이로 낮게 나타났습니다.
범선윤 판사는 ‘낮은 형량’과 ‘높은 집행유예율’의 배경 중 하나로 ‘유족(또는 피해자)과의 합의가 그대로 양형에 반영되는 경향’을 꼽았습니다. 실제로 유죄가 선고된 사건 중 1건을 제외한 69건에서 유족과의 합의가 이루어졌고, 대체로 합의 사항이 양형 이유에 기재됐습니다.7
합의를 제한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선언
아리셀 1심 재판부는 판결의 ‘양형 이유’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자신의 사업장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확률적으로 매우 낮고,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은 당장 장부상에 숫자로 찍히므로 기업가는 다른 기업가가 위와 같이 선처를 받는 것에 대한 학습효과로 이윤 극대화에 몰두하는 기업 경영을 하게 된다. (...) 이러한 악순환을 뿌리뽑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피고인들이 유족들과 합의하였다는 사정은 일부 제한적으로만 양형 사유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8
합의를 이유로 감경받는 사례가 쌓이면서 기업들에 학습효과를 주고, 안전사고 예방을 소홀히하게 되어 ‘산업재해 발생률이 줄어들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판결을 통해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 심포지엄 토론문에서 “기업이 예방적인 안전관리보다 유족과의 합의라는 사후적인 법적 대응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경우,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추구하는 사전 예방적 형사정책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9고 짚었습니다. 나아가 ‘유족과의 합의 여부’에서 ‘재발방지 안전 시스템 개선 유무’로 양형의 중심축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사고 발생 이후 기업이 ‘실질적으로 안전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양형의 핵심 기준으로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 *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1. 전상수 외, 《중대재해처벌법 해석과 입법론》, 2025, 9쪽
2. 전상수 외, 앞의 책, 10쪽
3. 제21대 국회에서 강은미, 박주민, 이탄희, 임이자, 박범계 의원이 제정안을 발의했고, 이중 임이자 의원안을 제외한 4개의 법안에 유죄 인정 절차와 양형 절차를 분리하는 특례 조항이 포함됐다.
4. 양형에 관한 특례 조항은 빠졌지만, 피해자의 신청 없이도 법원이 직권으로 피해자 또는 법정대리인을 증인으로 신문할 수 있도록 하는 ‘심리 절차에 관한 특례 조항’이 법에 포함됐다.
5. 제383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록 제1호, 2020. 12. 24., 26면(김남국위원 발언 참조)
6.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연구회 제15차 심포지엄: 중대재해 처벌과 양형〉 자료집, 2025, 100쪽
7. 합의가 양형에 반영되지 않은 판결도 있다. 한 법인의 대표이사가 공장 기계의 안전장치가 고장 난 사실을 알고도 노동자에게 작업을 지시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에서, 법원은 대표이사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피해자의 유족과 합의하고, 시정조치를 마쳤다고 하더라도 집행유예 등으로 선처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울산지방법원 2024. 4. 4. 선고 2023고단4497 판결)
8. 수원지방법원 2025. 9. 23. 선고 2024고합833 판결, 164쪽
9. 대법원 양형위원회, 앞의 자료집, 122쪽
🔗[판결문 보기] 아리셀중대재해참사 1심 판결 - 수원지방법원 2025. 9. 23. 선고 2024고합833, 2025고합24(병합), 529(병합)
🔗[판결문 보기] 아리셀중대재해참사 2심 판결 - 수원고등법원 2026. 4. 22 선고 2025노1502
📝글|코트워치(@courtwatch_official)
의미있는 사건의 재판을 빈틈없이 추적해 보도하는 비영리 독립언론
⚖ 이달의 판결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판결'은 재난참사와 관련된 판결을 시민의 눈높이에서 함께 읽고 이해하고자 합니다. 전문가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판결을 보다 쉽게 풀어 전하며, 우리 사회가 재난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책임과 기준을 세워왔는지를 함께 살펴봅니다. 재난피해자의 권리를 다시 묻고,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4년…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판결이 남긴 질문(상)
2020년 12월, 정의당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통과를 촉구하며 국회 본청 내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정의당 원내대표였던 강은미 의원은 산업재해 사고 유가족들과 함께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위한 단식에 돌입했고, 2021년 1월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통과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개인사업주, 경영책임자 등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의무를 지웁니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기업이 안전한 노동 환경을 마련하도록 하여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23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
2024년 6월 24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가장 많은 노동자가 희생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입니다. 배터리 폭발 사고로 23명의 노동자가 숨졌고, 9명이 다쳤습니다. 사망한 23명의 노동자 중 20명이 파견노동자였고, 파견노동자 20명 중 18명이 이주노동자였습니다. 불이 완전히 진화되기까지 22시간이 걸린 이 화재 사고는 ‘아리셀’이라는 업체가 화재 위험성이 높은 리튬 배터리 제조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발생한 인재라는 점이 수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아리셀 박순관 대표, 박중언 총괄본부장을 비롯한 관련자 8명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상, 파견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기), 건축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2025년 9월 23일, 1심 재판부는 박순관 대표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선고된 가장 높은 형량이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던 기업이 산업재해 발생 이후 피해자와의 합의를 통해 감경받고, 또다시 안전을 소홀히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판결에 남겼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항소심 판결에서 백지화됐습니다. 지난 4월 22일,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 판결을 깨고 박 대표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습니다. 일부 유·무죄 판단이 달라졌고, 무엇보다도 ‘피해자와의 합의’를 양형(형량을 정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이 1심과 달랐습니다.
아리셀 판결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심 판결은 중대산업재해 사건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를 양형에 반영할 때 고려해야 할 지점을 짚었습니다. 기계적인 감경이 아닌, 법이 만들어진 사회적 배경, 엄중한 처벌이 갖는 예방적 효과 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항소심 판결의 경우 1심 판결이 양형과 관련해 남긴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점에서 한계가 존재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의 유·무죄 판단과 관련해 새로운 법리(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기준이나 논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두 판결의 의미를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배터리 폭발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공장 3동 건물.
‘돈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빠져나가는’
‘어떻게 양형을 판단할 것인가’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논의된 지점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법안 심사의 대상이 된 5개 중 4개3의 법안은 공통적으로 ‘유죄 인정 절차와 양형 절차를 분리하는’ 조항을 포함했습니다. 양형 심리를 위한 심문기일을 별도로 지정해 전문가와 피해자 등의 진술을 듣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국민의 시각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양형이 가능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지만, 기존 법 체계와의 충돌 가능성 등의 사유로 포함되지 않았습니다.4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존의 법으로는 처벌하기 어려웠던 기업의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 범주에 포함함으로써 기업이 산업재해를 예방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예방 효과를 가질 정도’의 ‘유의미한 처벌 가능성’이 중요 쟁점으로 다뤄졌습니다.
“법인이나 기업이 돈으로써 그냥 대가를 지불하고 빠져나갈 수 있다고 한다면 사실상 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가지는 실효적인 의미가 상당 부분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이 됩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2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라든지 아니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라든지 (형량의) 하한을 지켜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고요.”5
법이 시행되고 4년. 이러한 입법 취지가 법원의 판결을 거치며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2025년 12월, 대법원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 심포지엄에서 범선윤 판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 판결의 양형을 분석해 발표했습니다. 법이 시행된 2022년 1월부터 2025년 9월 사이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은 총 70명이었고, 그 중 실형을 받은 사람은 6명(8.57%)에 불과했습니다.6 형량도 6개월에서 3년 사이로 낮게 나타났습니다.
범선윤 판사는 ‘낮은 형량’과 ‘높은 집행유예율’의 배경 중 하나로 ‘유족(또는 피해자)과의 합의가 그대로 양형에 반영되는 경향’을 꼽았습니다. 실제로 유죄가 선고된 사건 중 1건을 제외한 69건에서 유족과의 합의가 이루어졌고, 대체로 합의 사항이 양형 이유에 기재됐습니다.7
합의를 제한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선언
아리셀 1심 재판부는 판결의 ‘양형 이유’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자신의 사업장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확률적으로 매우 낮고,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은 당장 장부상에 숫자로 찍히므로 기업가는 다른 기업가가 위와 같이 선처를 받는 것에 대한 학습효과로 이윤 극대화에 몰두하는 기업 경영을 하게 된다. (...) 이러한 악순환을 뿌리뽑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피고인들이 유족들과 합의하였다는 사정은 일부 제한적으로만 양형 사유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8
합의를 이유로 감경받는 사례가 쌓이면서 기업들에 학습효과를 주고, 안전사고 예방을 소홀히하게 되어 ‘산업재해 발생률이 줄어들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판결을 통해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 심포지엄 토론문에서 “기업이 예방적인 안전관리보다 유족과의 합의라는 사후적인 법적 대응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경우,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추구하는 사전 예방적 형사정책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9고 짚었습니다. 나아가 ‘유족과의 합의 여부’에서 ‘재발방지 안전 시스템 개선 유무’로 양형의 중심축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사고 발생 이후 기업이 ‘실질적으로 안전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양형의 핵심 기준으로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 *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1. 전상수 외, 《중대재해처벌법 해석과 입법론》, 2025, 9쪽
2. 전상수 외, 앞의 책, 10쪽
3. 제21대 국회에서 강은미, 박주민, 이탄희, 임이자, 박범계 의원이 제정안을 발의했고, 이중 임이자 의원안을 제외한 4개의 법안에 유죄 인정 절차와 양형 절차를 분리하는 특례 조항이 포함됐다.
4. 양형에 관한 특례 조항은 빠졌지만, 피해자의 신청 없이도 법원이 직권으로 피해자 또는 법정대리인을 증인으로 신문할 수 있도록 하는 ‘심리 절차에 관한 특례 조항’이 법에 포함됐다.
5. 제383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록 제1호, 2020. 12. 24., 26면(김남국위원 발언 참조)
6.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연구회 제15차 심포지엄: 중대재해 처벌과 양형〉 자료집, 2025, 100쪽
7. 합의가 양형에 반영되지 않은 판결도 있다. 한 법인의 대표이사가 공장 기계의 안전장치가 고장 난 사실을 알고도 노동자에게 작업을 지시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에서, 법원은 대표이사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피해자의 유족과 합의하고, 시정조치를 마쳤다고 하더라도 집행유예 등으로 선처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울산지방법원 2024. 4. 4. 선고 2023고단4497 판결)
8. 수원지방법원 2025. 9. 23. 선고 2024고합833 판결, 164쪽
9. 대법원 양형위원회, 앞의 자료집, 122쪽
🔗[판결문 보기] 아리셀중대재해참사 1심 판결 - 수원지방법원 2025. 9. 23. 선고 2024고합833, 2025고합24(병합), 529(병합)
🔗[판결문 보기] 아리셀중대재해참사 2심 판결 - 수원고등법원 2026. 4. 22 선고 2025노1502
📝글|코트워치(@courtwatch_official)
의미있는 사건의 재판을 빈틈없이 추적해 보도하는 비영리 독립언론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판결'은 재난참사와 관련된 판결을 시민의 눈높이에서 함께 읽고 이해하고자 합니다. 전문가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판결을 보다 쉽게 풀어 전하며, 우리 사회가 재난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책임과 기준을 세워왔는지를 함께 살펴봅니다. 재난피해자의 권리를 다시 묻고,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