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9일은,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에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가 일어난 지 정확히 30년이 되는 날입니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날의 아픔은 유가족들에겐 여전히 손을 대면 신음이 새어 나오는 생생한 고통입니다.
과거의 고통을 오늘의 아픔으로
삼풍참사 30주년을 앞두고 센터는 올 초부터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30년에 걸친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시민들과 책임있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추모식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부터 유가족들을 만나 어떤 추모식이 되었으면 하는지 의견을 모으고, 과거의 피해로 치부하는 고통을 현재 진행형의 고통으로 각인시키기 위한 실태조사를 준비하고, 삼풍 참사를 널리 알리기 위한 카드뉴스도 준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추모식 당일 행사 준비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사진과 영상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식순지와 가슴에 달 추모 리본도 제작했습니다. 또한 미수습자 가족들의 시신이 방치되었던 난지도 노을공원에 추모비를 세우기 위한 서명운동도 시작했습니다.
양재시민의 숲이 분홍색으로 물들던 날
유가족들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분홍색을 추모색으로 정해 분홍 리본을 만들고, 위령탑이 설치된 길이 너무 외롭지 않게 바람개비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502명이 이름이 적힌 하트 팻말도 광장에 나와 시민들과 함께 적었습니다. 이 모든 작업들을 60, 70세의 어머님들이 노안의 눈과 주름진 손으로 한땀 한땀 빚어냈습니다. 그리고 추모식 전날 먼저 양재시민의 숲에 모여 오가는 길을 분홍색으로 물들였습니다.
추모식을 며칠 앞두고는 2달간 연구팀이 고군분투하며 준비해 온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30주기 유가족 실태조사' 결과보고서가 발표됐습니다. 180여 명의 유가족 연락처를 바탕으로 일일이 전화를 해 설득하는 작업을 거쳤고, 그중 30명의 유족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조사결과는 예상했지만, 또한 충격적이었습니다.
유가족의 63.3%가 여전히 외상후울분장애(PTED) 임상 기준 이상에 해당
83.3%의 유가족이 참사 이후 전문가의 심리지원을 받지 못함
86.7%의 유가족이 삼풍참사가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
30년이 지났지만 유가족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반복적 사고, 분노, 무기력감에 시달리며 여전히 그날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으로 이 실태조사가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센터로 삼풍 유가족이 그동안 묻어 놓았던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의료적 지원의 필요성을 제안해주시는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잊지 않겠습니다
손에 물기가 촉촉하게 내려앉는 습한 날이었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삼삼오오, 분홍으로 단장한 길을 따라 위령비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어느새 한적했던 공원이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가장 먼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다른 재난참사 피해자들이었습니다. 대구지하철 참사 가족들을 비롯해,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 씨랜드 화재 참사, 세월호 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인현동 화재 참사, 가습기 참사, 광주학동참사, 그리고 12.29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가족들이 함께 했습니다. 또한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해, 박주민, 용혜인 국회의원도 자리해주었습니다. 여기저기 취재나온 언론사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6월 29일 오전 10시 40분, 추모식이 엄수되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 등을 비롯한 내빈들의 인사말 끝에 유가족분들은 새 정부에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셨습니다.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은 다시는 이런 인재로 인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다시 다가옵니다.
416합창단, 추모시 낭독의 시간이 30년이 지나도 어제와 같은 유가족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잠시나마 위로해줍니다.

추모식은 늘 많은 생각을 품게 합니다. 특히 이번 삼풍 참사는 지난 30년간 제대로 된 위로, 사회적 관심에서 소외돼왔기에 더욱 여러 마음이 교차하는 자리였습니다.
남겨진 과제가 많기에, 지난 5개월의 여정이 잘 마무리되었다는 마음보다는 향후 남겨진 숙제에 마음에 무겁습니다. 502명의 희생자들이 헛되이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의 죽음과 가족들의 고통이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어딘가에 새겨놓고 싶기 때문입니다.
함께 기억하고, 마음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2025년 6월 29일은,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에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가 일어난 지 정확히 30년이 되는 날입니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날의 아픔은 유가족들에겐 여전히 손을 대면 신음이 새어 나오는 생생한 고통입니다.
과거의 고통을 오늘의 아픔으로
삼풍참사 30주년을 앞두고 센터는 올 초부터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30년에 걸친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시민들과 책임있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추모식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부터 유가족들을 만나 어떤 추모식이 되었으면 하는지 의견을 모으고, 과거의 피해로 치부하는 고통을 현재 진행형의 고통으로 각인시키기 위한 실태조사를 준비하고, 삼풍 참사를 널리 알리기 위한 카드뉴스도 준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추모식 당일 행사 준비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사진과 영상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식순지와 가슴에 달 추모 리본도 제작했습니다. 또한 미수습자 가족들의 시신이 방치되었던 난지도 노을공원에 추모비를 세우기 위한 서명운동도 시작했습니다.
양재시민의 숲이 분홍색으로 물들던 날
유가족들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분홍색을 추모색으로 정해 분홍 리본을 만들고, 위령탑이 설치된 길이 너무 외롭지 않게 바람개비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502명이 이름이 적힌 하트 팻말도 광장에 나와 시민들과 함께 적었습니다. 이 모든 작업들을 60, 70세의 어머님들이 노안의 눈과 주름진 손으로 한땀 한땀 빚어냈습니다. 그리고 추모식 전날 먼저 양재시민의 숲에 모여 오가는 길을 분홍색으로 물들였습니다.
추모식을 며칠 앞두고는 2달간 연구팀이 고군분투하며 준비해 온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30주기 유가족 실태조사' 결과보고서가 발표됐습니다. 180여 명의 유가족 연락처를 바탕으로 일일이 전화를 해 설득하는 작업을 거쳤고, 그중 30명의 유족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조사결과는 예상했지만, 또한 충격적이었습니다.
유가족의 63.3%가 여전히 외상후울분장애(PTED) 임상 기준 이상에 해당
83.3%의 유가족이 참사 이후 전문가의 심리지원을 받지 못함
86.7%의 유가족이 삼풍참사가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
30년이 지났지만 유가족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반복적 사고, 분노, 무기력감에 시달리며 여전히 그날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으로 이 실태조사가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센터로 삼풍 유가족이 그동안 묻어 놓았던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의료적 지원의 필요성을 제안해주시는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잊지 않겠습니다
손에 물기가 촉촉하게 내려앉는 습한 날이었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삼삼오오, 분홍으로 단장한 길을 따라 위령비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어느새 한적했던 공원이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가장 먼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다른 재난참사 피해자들이었습니다. 대구지하철 참사 가족들을 비롯해,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 씨랜드 화재 참사, 세월호 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인현동 화재 참사, 가습기 참사, 광주학동참사, 그리고 12.29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가족들이 함께 했습니다. 또한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해, 박주민, 용혜인 국회의원도 자리해주었습니다. 여기저기 취재나온 언론사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6월 29일 오전 10시 40분, 추모식이 엄수되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 등을 비롯한 내빈들의 인사말 끝에 유가족분들은 새 정부에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셨습니다.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은 다시는 이런 인재로 인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다시 다가옵니다.
416합창단, 추모시 낭독의 시간이 30년이 지나도 어제와 같은 유가족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잠시나마 위로해줍니다.
추모식은 늘 많은 생각을 품게 합니다. 특히 이번 삼풍 참사는 지난 30년간 제대로 된 위로, 사회적 관심에서 소외돼왔기에 더욱 여러 마음이 교차하는 자리였습니다.
남겨진 과제가 많기에, 지난 5개월의 여정이 잘 마무리되었다는 마음보다는 향후 남겨진 숙제에 마음에 무겁습니다. 502명의 희생자들이 헛되이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의 죽음과 가족들의 고통이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어딘가에 새겨놓고 싶기 때문입니다.
함께 기억하고, 마음 모아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