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이런 내 마음은 당연하고 옳다 - tvN <혼술남녀> 고 이한빛PD님의 엄마 김혜영

2025-04-30






이런 내 마음은 당연하고 옳다



자식을 잃은 지 일 년이 막 지난 엄마가 찾아왔다. 내 책 『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 를 읽고 연결 연결해서 연락을 했다. 얼마나 힘들면 멀리 있는, 얼굴도 본 적 없는 나한테까지 올까 당황스러웠지만 그 막막함과 슬픔의 깊이를 알기에 피하지 않았다. 연습 없이 답을 찾아주거나 빠르고 단단하게 일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도깨비방망이가 있다면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만났다.

 

죽음, 상실, 애도의 과정에는 정답이 없었다. 아들 한빛을 잃고 9년이란 시간이 흘렀어도 나에게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한빛에 대해 얘기할 때는 ‘그랬었어’ ‘그랬지’하면서 과거완료형으로 밖에 얘기할 수 없다는 게 기가 막혔다. 행복이나 희망 같은 말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인지조차 잊어버렸다. 문득이라도 살아가야 하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없고 내 마음이 어떤지 읽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살아가고 있었다. 아니 공허하게 시간에 얹혀 있다고 할까? 영혼 없이 떠돌아다니는 진공 상태였고 일상은 뒤죽박죽이었다.


창비에서 출간된 정혜신 작가의 책 『애도연습』 표지. 표지는 붉은색, 노란색, 하늘색, 흰색 선들이 격자무늬처럼 배치된 추상적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단에 저자명 '정혜신'과 책 제목 '애도연습', 출판사 '창비' 로고가 검은색 글씨로 인쇄되어 있다.

책 「애도연습」, 정혜신 저, 창비 출판(2024)

 

애도연습 (정혜신 저)』은 이런 나를 인정하게 했다. 어수선하고 불안한 내 마음은 당연한 것이고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조금씩 정리되면서 평화를 가질 수 있었다.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힘들어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힘든 일을 만났을 때 충분히, 마음껏 힘들어할 수 있어야만 그다음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고름을 빼내야만 그 위에서 새 살이 꾸둑꾸둑 올라오기 시작하듯이 마음껏 울고 마음껏 미안해 하고 마음껏 그리워하고 마음껏 연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112쪽)


작가는 오랜 시간을 국가폭력피해자, 해고노동자, 세월호 유가족들의 치유자로 살았고 사회 곳곳의 트라우마 현장의 피해자들과 함께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직후 수많은 죽음을 직면하고 유가족들을 만나며 고통과 가장 가까이 있었다. 이때 고통(상실)의 치유는 내 상처를 드러내는 데서 비롯하지 않고 그 상처에 대한 내 시선이나 나의 마음이 어땠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결정된다고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그렇게 살면 뜻밖에도 삶이 매일 꽃다발 같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고백한다.


아들 한빛이 떠난 후. 나는 모든 것, 특히 인간관계를 다 끊었다. 철저히 울타리를 치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오로지 혼자 버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말을 잃어가고 있었고 점점 고립되면서 외로웠지만 자식을 잃었는데 무엇이 아쉽겠는가?


책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 김혜영 저, 후마니타스 출판(2021)


지금 돌이켜보면 주변의 시선이나 그들이 툭 던지는 말 한마디에서 받는 상처가 두려워 먼저 방어벽을 쳤던 것 같다. 누군가 손 내밀어 주어도 동정 같아서 공감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할 슬픔이라고 생각해 울음을 삼켰고 떠난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인정하지 않고 발버둥 쳤다. 폐허가 되고 있는 나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겠다. 애도에도 연습(시간)이 필요했다. 이 과정을 받아들여야 했다. 시간이 흐른다고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힘든 상황에서 힘들어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같이 기뻐할 아들이 내 곁에 없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그리움이 솟구치는 것 역시 당연한 거였다. 이런 내 마음은 다 정상이고 옳다는 것을 알았다.



 이름 (E Reum), NAME : we ‘모닥불 너머의 너의얼굴’ 



고통 속에 있는 그 엄마를 따뜻하게 안았다. ‘떠난 자식을 맞이하는 모든 과정은 눈물과 함께 시작되기에 눈물 없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고통을 치유할 수 없다’는(28쪽) 말을 전하면서 울고 싶을 때는 마음껏 울자고 했다. 또 지금 이 연습(시간)이 아들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고 그랬기에 그동안의 고통의 시간(연습) 역시 결코 헛되지 않다고 애썼다고 우리 자신에게 말해주자고 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새롭고 건강한 내일을 기다리며 살아보자고 했다.




 김혜영. tvN  <혼술남녀> 고 이한빛PD님의 엄마.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곁에서 아들의 삶을 이어가려 애쓰고 있다.




작품 소개  


필자 김혜영님의 이야기 

"지난 4월, 고양시의 작은 교회에서 열린 토크쇼에서 이름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작가님께서는 한빛을 생각하며 작업했다고 하시며 이 작품(NAME : we ‘모닥불 너머의 너의얼굴' )을 액자에 담아 제게 선물해주셨어요. 어둠 속에 피운 모닥불, 그 불을 중심으로 모이면  빛이 있어 서로의 얼굴이 보이고,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를 기억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정말 고마웠어요. 이 작품을 이 글을 읽을 분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작품 설명


 NAME : we ‘모닥불 너머의 너의얼굴’


어두운 밤

칠흙 같던 자리

추운 몸을 데워준건

따스한 모닥불 이었지만

차갑던 맘을 녹여준건

모닥불 너머의 얼굴

그리 비치던

너의 얼굴


인간의 빛 단 한줄기 없던 칠흙 같던 밤

대 자연 속에 피워진 모닥불 하나 그리고 유일 하던 너

일렁이고 타닥이던 불빛에 두려움이 물러가고 진정 따스할 수 있던 건

“너의 얼굴에 깃든 너의 온기 때문이었어.” 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인스타그램   @e.reum

         


**이 작품은 이름 작가님의 작업시리즈 중 NAME 시리즈 입니다. NAME 시리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이 링크(https://1661-2014.org/109)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Conceptual Artist E Reum

이름은 이미지를 다루는 시각 미디어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빛’에 대해 이야기하는 개념 예술가이다. 

삶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이미지부터 비롯되며, 이는 현대인의 존재 방식에 깊은 영향을 준다고 믿어 연극영화과에서 영화 촬영을 전공하였다. 이후 사진과 회화를 기반으로 하며 다양한 매체와의 연합으로 작업을 확장해오고 있다.

작가로서의 여정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삶에 꿈을 품게 되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처럼 나의 이야기도 누군가의 삶에 빛처럼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현상의 이면을 궁금해 했고, 그 근본적인 이유를 성경에서 찾게 되었다. 특히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는 말씀은 외부로부터 규정되지 않는 존재 방식을 의미하며, 이는 빛으로 스스로 이미지를 남기는 사진의 속성과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이해는 나의 작업을 빛이라는 매개를 통해 존재와 본질에 대한 탐구로 이끈다.


“나는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빛과 하나 되어 자라듯, 인간의 존재 역시 주어진 빛으로 인해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빛에서 빛의 의미적인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으로서 존재의 빛을 회복하기 위해 존재의 시작과 끝이 무엇일까 고민하였고, 그것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홈페이지       www.ereum.kr
인스타그램   @e.reum



●  이달의 책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책'은 재난참사피해자가 또 다른 재난참사피해자에게 건네는 책으로써의 위로이자, 읽고 쓰기를 혼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상실 이후를 함께 나누는 장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회복 불가능한 시간을 책으로 겪어내는 이들에게 이달의 책이 잠시라도 숨 쉴 구멍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메일 kdrcwithus@gmail.com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 6 부성빌딩 7층


ⓒ 2023 all rights reserved - 재난피해자권리센터.

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주소 (04559)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 6, 부성빌딩 7층

Tel 02-2285-2014

E-mail kdrcwithus@gmail.com

인스타그램 @kdrcwithus

ⓒ 재난피해자권리센터 All Rights reserved. SITE BY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