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부는 날, 같은 사람과 장소를 떠올리게 되는 일
날이 조금은 따뜻해졌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쌀쌀하게 여겨지는 봄이네요. 부는 바람에 애타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떠올릴 사람들의 얼굴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해요. 그래서인지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부는 바람은 누구를 떠올리게 하나요?
요즘 저는 바람이 불면 삼풍백화점붕괴참사 피해자분들, 그중에서도 진옥자 님의 옆모습이 자주 떠올라요. 4월 1일 청강대학교 ‘참사와 서사’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마음에 깊이 남았었거든요.

참사와 서사 수업에서는 매주 학생들이 재난피해자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4월 1일에 강의실을 찾아오신 분들은 삼풍백화점 참사의 피해자분들이셨어요. 반가운 인사로 시작된 수업은 삼풍백화점참사에 대한 소개와 학생들의 질문, 피해자분들의 답변으로 이어졌습니다.
삼풍백화점붕괴참사는 1995년 6월 29일 발생했습니다. 부실 공사와 불법 구조변경으로 지상의 5개 층이 포개어지듯 무너져 내린 참사였습니다. 502명이 사망했고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미수습자분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단일 재난으로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참사임에도 처벌은 미흡했고, 참사의 아픔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군자 님은 참사로 동생을 잃었습니다. 참사 당일부터 동생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기까지, 단 하루도 참사 현장을 떠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참사를 이야기할때면 정군자 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람 하나 이렇게 들어갈 정도 땅을 판 거예요. 오빠가 먼저 들어갔어요. 오빠가 들어갔는데 안 나오는 거에요. 안 나오는거야. 그래서 왜 안나오지 그랬는데, 제가 들어가려고 그러니까 저희 신랑이 들어가더라고. 근데 또 안 나와. 들어가기만 하면 안 나오는 거에요.
(나중에 나오고 나서 들었는데) 안에 들어가니까 수박이 150개가 살아 있어요. 수박이, 수박이 150개 살아 있는데 사람이 못 살았다는게 너무너무 허망하니까 거기서 울고 못 나온 거죠. 사람들이 그 수박을 밖에 가지고 나오는데 너무 허망함이랄까 표현을 하지 못할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건물이 무너진 후, 잔해들은 건축물 폐자재 처리장과 난지도로 옮겨졌습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요구하고서야 난지도에 현장지휘소가 설치되어 사체 확인과 유류품 회수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진옥자 님은 참사로 딸을 잃은 미수습자 가족 중 한 분입니다. 진옥자 님은 참사 당시, 20대 추정 미상의 여성이 수습될 때마다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끝내 딸을 찾지 못했다며 ‘난지도에서 그렇게 많은 뼈를 주웠는데, 우리 애는 없었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30년의 시간동안 피해자들은 어떻게 참사의 아픔을 견디며 가족을 기억하고 애도하였을까요? 학생들의 질문에 진옥자 님은 바람이 부는 날이면 청소 용구를 챙겨 양재 시민의 숲에 있는 위령탑으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비바람만 불었다하면 (위령탑이) 너무 더러워져요. 그러니 또 집에 있으면, 바람만 불면 또 가고. 안갈 수가 없어요. 그거 할 사람이 없어요, 저밖에. 그래서 제가 차 운전을 하니까 시간만 나면 가는데, 그래도 갔다오면 마음이 편해요. 거기라도 갔다 오면 편하지.”
정군자 님은 마음이 무너질때마다 유족들과 서로 의지하며 대화를 나눴고, 이렇게 기억해 주려는 사람들이 있어 힘이 난다고도 하셨어요.
“저희 같은 사람을 이렇게 초대해서 또 당시의 그 역사를 알려고 하는 것에 너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두 분이 견뎌온 삶을 상상해 봤습니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불완전하게나마 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 걸어보려는 일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서로 달라 서로의 아픔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서로 다른 우리가 각자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눈을 마주치고 귀를 기울이고 목소리 너머의 아픔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앞으로 나아가는 변화의 힘이 있다는게 느껴졌어요.
오는 6월 29일이면 삼풍백화점붕괴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새 30년이 됩니다.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잊혀지지 않고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있습니다. 올해 센터는 참사 30주기를 맞아 피해자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할 예정이에요. 피해자분들의 이야기를 <웹툰>과 <연구 결과>로 세상에 전달하며, 새롭게 삼풍백화점참사를 사회와 연결지어볼 계획이에요.
센터를 통해 건네진 이야기가, 나와 너를 잇고 우리가 되어 삼풍백화점참사 피해자들의 삶을 다시 살아가게 만들면 좋겠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 떠오르게 되는 사람과 장소가 생기듯이요.
바람이 부는 날, 같은 사람과 장소를 떠올리게 되는 일
날이 조금은 따뜻해졌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쌀쌀하게 여겨지는 봄이네요. 부는 바람에 애타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떠올릴 사람들의 얼굴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해요. 그래서인지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부는 바람은 누구를 떠올리게 하나요?
요즘 저는 바람이 불면 삼풍백화점붕괴참사 피해자분들, 그중에서도 진옥자 님의 옆모습이 자주 떠올라요. 4월 1일 청강대학교 ‘참사와 서사’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마음에 깊이 남았었거든요.
참사와 서사 수업에서는 매주 학생들이 재난피해자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4월 1일에 강의실을 찾아오신 분들은 삼풍백화점 참사의 피해자분들이셨어요. 반가운 인사로 시작된 수업은 삼풍백화점참사에 대한 소개와 학생들의 질문, 피해자분들의 답변으로 이어졌습니다.
삼풍백화점붕괴참사는 1995년 6월 29일 발생했습니다. 부실 공사와 불법 구조변경으로 지상의 5개 층이 포개어지듯 무너져 내린 참사였습니다. 502명이 사망했고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미수습자분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단일 재난으로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참사임에도 처벌은 미흡했고, 참사의 아픔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군자 님은 참사로 동생을 잃었습니다. 참사 당일부터 동생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기까지, 단 하루도 참사 현장을 떠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참사를 이야기할때면 정군자 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람 하나 이렇게 들어갈 정도 땅을 판 거예요. 오빠가 먼저 들어갔어요. 오빠가 들어갔는데 안 나오는 거에요. 안 나오는거야. 그래서 왜 안나오지 그랬는데, 제가 들어가려고 그러니까 저희 신랑이 들어가더라고. 근데 또 안 나와. 들어가기만 하면 안 나오는 거에요.
(나중에 나오고 나서 들었는데) 안에 들어가니까 수박이 150개가 살아 있어요. 수박이, 수박이 150개 살아 있는데 사람이 못 살았다는게 너무너무 허망하니까 거기서 울고 못 나온 거죠. 사람들이 그 수박을 밖에 가지고 나오는데 너무 허망함이랄까 표현을 하지 못할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건물이 무너진 후, 잔해들은 건축물 폐자재 처리장과 난지도로 옮겨졌습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요구하고서야 난지도에 현장지휘소가 설치되어 사체 확인과 유류품 회수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진옥자 님은 참사로 딸을 잃은 미수습자 가족 중 한 분입니다. 진옥자 님은 참사 당시, 20대 추정 미상의 여성이 수습될 때마다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끝내 딸을 찾지 못했다며 ‘난지도에서 그렇게 많은 뼈를 주웠는데, 우리 애는 없었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30년의 시간동안 피해자들은 어떻게 참사의 아픔을 견디며 가족을 기억하고 애도하였을까요? 학생들의 질문에 진옥자 님은 바람이 부는 날이면 청소 용구를 챙겨 양재 시민의 숲에 있는 위령탑으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비바람만 불었다하면 (위령탑이) 너무 더러워져요. 그러니 또 집에 있으면, 바람만 불면 또 가고. 안갈 수가 없어요. 그거 할 사람이 없어요, 저밖에. 그래서 제가 차 운전을 하니까 시간만 나면 가는데, 그래도 갔다오면 마음이 편해요. 거기라도 갔다 오면 편하지.”
정군자 님은 마음이 무너질때마다 유족들과 서로 의지하며 대화를 나눴고, 이렇게 기억해 주려는 사람들이 있어 힘이 난다고도 하셨어요.
“저희 같은 사람을 이렇게 초대해서 또 당시의 그 역사를 알려고 하는 것에 너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두 분이 견뎌온 삶을 상상해 봤습니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불완전하게나마 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 걸어보려는 일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서로 달라 서로의 아픔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서로 다른 우리가 각자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눈을 마주치고 귀를 기울이고 목소리 너머의 아픔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앞으로 나아가는 변화의 힘이 있다는게 느껴졌어요.
오는 6월 29일이면 삼풍백화점붕괴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새 30년이 됩니다.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잊혀지지 않고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있습니다. 올해 센터는 참사 30주기를 맞아 피해자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할 예정이에요. 피해자분들의 이야기를 <웹툰>과 <연구 결과>로 세상에 전달하며, 새롭게 삼풍백화점참사를 사회와 연결지어볼 계획이에요.
센터를 통해 건네진 이야기가, 나와 너를 잇고 우리가 되어 삼풍백화점참사 피해자들의 삶을 다시 살아가게 만들면 좋겠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 떠오르게 되는 사람과 장소가 생기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