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 -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신애진님의 엄마, 김남희

2025-04-04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



상실의 사전적 의미는 첫째,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이고, 둘째,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입니다. 나의 상실은 두 가지 모두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랑했던 저의 딸 애진이와 영원히 헤어져 더 이상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없습니다. 지금 제가 사는 세상에서 두 번 다시 손을 잡아보거나, 안아볼 수 없습니다. 애진이가 저를 그리워할 줄 알았는데, 제가 애진이를 추억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관계에 따라 상실에 대처하는 방법이 모두 다릅니다. 한없이 우는 사람, 분노가 끓어오르는 사람, 침묵 속에 갇히는 사람 등 그 어떠한 것도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겪어보지 못한 솟구치는 감정들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표출되어 흘러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연필과 색연필로 그린 감성적인 일러스트. 하단에는 작은 기차가 선로를 따라 달리고 있으며, 그 위로 검은색과 회색 선들이 물결치듯 흐르고 있다. 선 사이에는 노란색과 보라색의 작은 원들이 흩어져 있다. 하늘에는 두 개의 해가 떠 있고, 중앙에는 노란 별이 있다. 하단에는 손글씨로 적힌 글이 있으며, '너 없는 하루가 또 간다. 우리 애진이 없이 하루가 또 간다. 애진아. 나의 딸 애진아. 엄마는 더 이상 어떤 생명의 꺼짐도 슬프거나 가슴아프지 않다. 한편, 그들이 부럽구나.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과 슬픔이 아니란다. 나의 삶의 한 조각이고 너를 보러가는 기쁨이구나. 긴 기다림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기다리는 동안 우리 애진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잘 만들어 갈께. 우리 애진이 꼭 안고 머리 쓸어주고 싶구나. 사랑해. 보고싶다.'라는 문장이 쓰여있다.  그림의 우측 하단에는 '24.3.25'라고 적혀 있다.

 그림1. 「너 없는 하루가 지나간다」, 김남희



저는 이 세상 모든 길을 걸을 기세로 돌아다녔습니다. 애진이랑 갔던 곳, 애진이가 가고 싶어 했던 곳, 골목에서 만나는 모든 성당, 그리고 성지순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습니다. 애진이와의 추억이 곳곳에 묻어 있는 집에 머물기가 너무나 버거웠습니다. 눈길 가는 곳마다 애진이가 있었으니까요. 집엔 그저 잠깐 점찍듯 들렀습니다. 온 세상을 돌아다녀도 널 뛰는 감정들이 뒤엉켜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제자리를 뱅뱅 돌고 있는 그때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라는 책을 지인에게 선물 받았습니다.

 

애도는 우리 대다수에게 낯선 땅이자, 이해하지 못할 내면의 언어로 말하고 듣는 법을 찾아야 하는 세계입니다. 비극적인 상실을 겪으면 우리는 확신하던 모든 것이 변합니다. 삶이 다시 정상적으로 보일 확실하고도 명확한 규칙은 없지만, 당신의 가족이 이 과정을 건강한 방식으로 견뎌 내는데 도움이 될 가이드라인은 있습니다. p258

 

이 책의 저자 브룩 노엘과 패멀라 D. 블레어 역시 예기치 않은 순간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상실의 경험이 있습니다. 저자는 비극적으로 누군가를 잃고 상실을 겪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찾아 헤매던 것과 비슷한 가이드라인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마음에 담으며, 본인에게도 있었다면 좋았을 책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는 상실을 경험한 많은 이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애도의 과정을 지나는 이들을 위해 만든 실용적인 가이드라인입니다. 저자의 말대로 확실한 정답은 없지만, 개인적인 상실의 경험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정리함으로써 상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그 과정을 어떻게 통과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필과 색연필로 그린 따뜻한 감성의 일러스트. 노란색 털을 가진 커다란 곰이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를 다정하게 안아주고 있다. 소녀는 회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곰에게 기대어 있다. 그림의 오른쪽 위에는 보라색 별이 떠 있으며, 오른쪽 아래에는 '그저 단 한 번만 안아볼 수 있다면'이라는 문구와 함께 '신애진 24.8.2.'라고 적혀 있다.

그림2. 「그저 단 한 번만 안아볼 수 있다면」, 김남희

 

책에서는 상실 직후에 해야 할 일, 결정해야 할 사항들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도 과정에서 특히 어려움이 발생하는 생일, 명절, 기념일 등 특별한 날들을 보내는 방법에 대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무엇보다 떠난 이와의 관계에 따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떻게 애도를 표현해야 하는지, 각자 받아안은 상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예시를 통해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떠난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다양한 관계 속에서 떠난 이를 그리워하고 애도합니다. 떠난 이를 중심으로 한 관계 속에서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우리가 상실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책에 공유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슬픔을 직면하는 방법을 배웠고, 슬픔과 상실로 인한 감정들을 다루는 다양한 방법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가 직면하게 될 많은 문제들을 예측할 수 있었고,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저 통과하는 것이다

결코 그것을 피할 수 없기에 그냥 지나갈 수 없다

그것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저 달라질 뿐이다.

매일매일

애도는 새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P140 자녀를 상실한 어머니의 시 ‘애도’


 

사진1.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의 책 표지 이미지


상실의 아픔과 슬픔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고 이야기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아픔은 마음의 바닥에 고요히 흐를 뿐입니다.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을 뿐입니다. 애진이가 떠나고 3년이 맞이하고 있는 지금, 저는 마음속 깊은 곳의 아픔을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의 마음을 어느 정도 조율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지만, 우리는 남은 생을 이어가야 합니다. 아픔과 분노, 슬픔을 잘 수용하고, 삶의 에너지로 전환하여야 합니다. 누군가 상실의 아픔으로 깜깜한 어둠을 헤매고 있다면 이 책을 권해 드립니다. 나만의 속도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믿습니다.




🟣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신애진님의 엄마 김남희





그림 소개 🟣 애진이가 떠나고 잠들지 못했던 수많은 밤, 저는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봤던 국화, 애진이의 물건들, 애진이와 함께 했던 순간들 그리고 나의 마음을 그렸습니다. 애진이의 사랑과 나의 마음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저는 아마도 애진이를 보낸 슬픔과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아픔과 슬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방법은 조금씩 달라도 이르는 길은 같습니다. 저는 애진이와 함께, 여러분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다 함께...



🟣 이달의 책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책'은 재난참사피해자가 또 다른 재난참사피해자에게 건네는 책으로써의 위로이자, 읽고 쓰기를 혼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상실 이후를 함께 나누는 장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회복 불가능한 시간을 책으로 겪어내는 이들에게 이달의 책이 잠시라도 숨 쉴 구멍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메일 kdrcwithus@gmail.com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 6 부성빌딩 7층


ⓒ 2023 all rights reserved - 재난피해자권리센터.

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주소 (04559) 서울특별시 중구 창경궁로 6, 부성빌딩 7층

Tel 02-2285-2014

E-mail kdrcwithus@gmail.com

인스타그램 @kdrcwithus

ⓒ 재난피해자권리센터 All Rights reserved. SITE BY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