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든지 오래 울 수 있다
2015년부터 시작된 416예배(현 4.16 생명안전공원예배)에는 고정적으로 오시는 분들도 많지만,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다. 특히 가족이나 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으신 분들이 자신의 슬픔 속에서 세월호 유족의 아픔이 생각나 찾아오시곤 한다.
2023년 6월 5일 단원고가 보이는 공원 한 귀퉁이 산책로 옆 공터에서 4.16 생명안전공원 예배를 드리는데 시인 한 분이 지인과 함께 예배드리러 오셨다. 그분은 세월호 참사가 있는 주간에 갑작스럽게 아들을 보낸 어머니였다. 그 이전에는 여성운동 활동가로, 성공회대학교 실천여성학 교수로 활발하게 활동하신 분이셨다. 허성우 시인은 4.16 세월호 참사와 아들의 죽음이 겹쳐 있어서 4.16가족을 찾아오는 게 더 어려우셨다고 했다. 허성우 시인은 아들을 잃고 써온 시를 담은 시집을 4.16 유가족에게 선물로 주고 가셨다. 책 여는 글에 시를 쓴 이유를 시로 적어 주셨다.

스물두 살 네가 떠난 후
목적과 의미는
모두 사라졌다
말, 글, 언어라 부르는 것
다 무너져 내렸다
그때 문득
시가 찾아왔다
내 안과 밖 혹은 어디인지 모를 곳에서
눈물처럼 흘러 나왔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마음은
행간에 고여 있다
화석이 된 가슴
메마른 뜰을 적시며 흘러온 시들
행위도 소유도 아닌
나를 통과해 가는 자유
이 자유를 네 영혼에 바친다
애도의 밤을 지나
새벽 앞에 섰으나
아침을 기다리는 오래된 문 앞에 있다
죽음을 슬퍼하는 모든 이들을 추앙하며
흘러왔기에 흘러가기를
묶이거나 막히지 않기를
바람 되어 어디로든 날아가기를
그때는 나의 아픔에 그분의 아픔까지 더해져 시를 읽는 게 어려웠다. 3년이 지난 지금에야 찬찬히 끝까지 읽어보게 되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너를 잃은 슬픔/ 극복하라 하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너 없는 날들/ 명랑하게 살라 하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아픔 밝고 일어나/ 장하게 걸으라 하네 /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너를 잃은 삶/ 그 너머로 갈 수 없는데/ 너를 놓친 고통/ 그 너머에 닿을 수 없는데/ 다시 볼 수 없는 아픔/ 그 외부로 날아갈 수 없는데/뭘 어쩌라는 건지/ 도통 모르겠네
은유와 함축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은 날 것의 언어들이 읽는 내내 마음에 콕 박혀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듯 눈물이 나왔다. 아 아직도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눈물. 순간 자신을 책망하다가 다시 시를 읽어 본다.
“얼마든지 오래 울 수 있다”
(앞부분 생략)
눈물, 얼마나 인간적인지/ 온몸 구석구석/ 핏줄 세포 가득/ 스며들어 있다/ 언제라도 툭, 흘러나와/ 투명하고 맑은 존재 알리며/ 영원한 바다로 출렁인다.

대부분의 참사 피해자들은 충분한 애도의 시간 없이 싸움을 시작한다. 그렇게 1년, 3년, 10년 아니 그 이상을 버틴다. 슬픔을 딛고 명랑하고 장하게 살아온 시간이다. 나의 슬픔이 내 아이의 삶까지 슬픔으로 채울 것 같은 두려움에 눈물이 흘러나올 틈을 꼭꼭 막고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읽으며 온몸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던 눈물을 흘려 보냈다.
시인은 질문이라는 제목의 시를 세 편이나 실었다. 우리 또한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우리 자신에게, 세상에게, 또는 절대자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졌던가. 얼마나 많이 씨름했던가. 명쾌한 답을 얻기를 원했지만, 미완의 물음표는 여전히 남아 시인의 말처럼 ‘아침을 기다리는 오래된 문 앞에’ 서 있다. 그래도 침묵하지 않고 답을 갈구하는 우리의 용기가 세상을 바꾸고, 우리 자신도 성장시키지 않았나. 또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같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진실을 찾으려는 걸음은 멈출 수가 없다.
유난히 더운 올해 여름, 모든 꽃이 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정원에는 넝쿨들만 억척스럽게 자라고 있다. 그런데 넝쿨을 욕하며 걷어내다 보면 넝쿨이 뒤덮은 곳의 아래는 시원하고 촉촉해 그 속에서 수많은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우리의 억척스러운 질문이나 기도와 함께 찾아오는 눈물도 그러하지 않을까. 그 눈물이 우리를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위로하고 다시 나아갈 힘을 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얼마든지 오래 울어도 된다.
📝 박은희.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단원고 2학년3반 유예은님의 엄마
4.16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며 예은이가 노래를 좋아한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는 부족한 엄마,
기억이라면 그리스도인이 제일이라는 생각에 2015년부터 지금까지
4.16 예배와 기도회를 끈질기게 쉬지 않고 이어온 4.16예배팀의 한 사람.
📸사진 설명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사진1. 『얼마든지 오래 울 수 있다』 책표지
사진2. 2023년 6월 5일, 4.16생명안전공원예배 중 허성우 시인 발언 모습 (허성우 시인은 대전에서 태어나 젊은 날 페미니즘을 만나 여성운동활동가로, 그리고 여성학연구자로 살았다. 이화여대와 영국 서식스 대학(University of Sussex)에서 학위를 마친 후 성공회대학교 실천여성학전공 교수로 일하다가 사직, 귀향했다. 아들을 갑작스럽게 하늘로 떠나보낸 후 시를 통해 묻고, 고백하고, 애도하는 시간을 만났다. 현재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종신부제로서 세종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다.)
📚 이달의 책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책'은 재난참사피해자가 또 다른 재난참사피해자에게 건네는 책으로써의 위로이자, 읽고 쓰기를 혼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상실 이후를 함께 나누는 장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회복 불가능한 시간을 책으로 겪어내는 이들에게 이달의 책이 잠시라도 숨 쉴 구멍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얼마든지 오래 울 수 있다
2015년부터 시작된 416예배(현 4.16 생명안전공원예배)에는 고정적으로 오시는 분들도 많지만,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다. 특히 가족이나 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으신 분들이 자신의 슬픔 속에서 세월호 유족의 아픔이 생각나 찾아오시곤 한다.
2023년 6월 5일 단원고가 보이는 공원 한 귀퉁이 산책로 옆 공터에서 4.16 생명안전공원 예배를 드리는데 시인 한 분이 지인과 함께 예배드리러 오셨다. 그분은 세월호 참사가 있는 주간에 갑작스럽게 아들을 보낸 어머니였다. 그 이전에는 여성운동 활동가로, 성공회대학교 실천여성학 교수로 활발하게 활동하신 분이셨다. 허성우 시인은 4.16 세월호 참사와 아들의 죽음이 겹쳐 있어서 4.16가족을 찾아오는 게 더 어려우셨다고 했다. 허성우 시인은 아들을 잃고 써온 시를 담은 시집을 4.16 유가족에게 선물로 주고 가셨다. 책 여는 글에 시를 쓴 이유를 시로 적어 주셨다.
스물두 살 네가 떠난 후
목적과 의미는
모두 사라졌다
말, 글, 언어라 부르는 것
다 무너져 내렸다
그때 문득
시가 찾아왔다
내 안과 밖 혹은 어디인지 모를 곳에서
눈물처럼 흘러 나왔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마음은
행간에 고여 있다
화석이 된 가슴
메마른 뜰을 적시며 흘러온 시들
행위도 소유도 아닌
나를 통과해 가는 자유
이 자유를 네 영혼에 바친다
애도의 밤을 지나
새벽 앞에 섰으나
아침을 기다리는 오래된 문 앞에 있다
죽음을 슬퍼하는 모든 이들을 추앙하며
흘러왔기에 흘러가기를
묶이거나 막히지 않기를
바람 되어 어디로든 날아가기를
그때는 나의 아픔에 그분의 아픔까지 더해져 시를 읽는 게 어려웠다. 3년이 지난 지금에야 찬찬히 끝까지 읽어보게 되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너를 잃은 슬픔/ 극복하라 하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너 없는 날들/ 명랑하게 살라 하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아픔 밝고 일어나/ 장하게 걸으라 하네 /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너를 잃은 삶/ 그 너머로 갈 수 없는데/ 너를 놓친 고통/ 그 너머에 닿을 수 없는데/ 다시 볼 수 없는 아픔/ 그 외부로 날아갈 수 없는데/뭘 어쩌라는 건지/ 도통 모르겠네
은유와 함축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은 날 것의 언어들이 읽는 내내 마음에 콕 박혀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듯 눈물이 나왔다. 아 아직도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눈물. 순간 자신을 책망하다가 다시 시를 읽어 본다.
“얼마든지 오래 울 수 있다”
(앞부분 생략)
눈물, 얼마나 인간적인지/ 온몸 구석구석/ 핏줄 세포 가득/ 스며들어 있다/ 언제라도 툭, 흘러나와/ 투명하고 맑은 존재 알리며/ 영원한 바다로 출렁인다.
대부분의 참사 피해자들은 충분한 애도의 시간 없이 싸움을 시작한다. 그렇게 1년, 3년, 10년 아니 그 이상을 버틴다. 슬픔을 딛고 명랑하고 장하게 살아온 시간이다. 나의 슬픔이 내 아이의 삶까지 슬픔으로 채울 것 같은 두려움에 눈물이 흘러나올 틈을 꼭꼭 막고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읽으며 온몸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던 눈물을 흘려 보냈다.
시인은 질문이라는 제목의 시를 세 편이나 실었다. 우리 또한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우리 자신에게, 세상에게, 또는 절대자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졌던가. 얼마나 많이 씨름했던가. 명쾌한 답을 얻기를 원했지만, 미완의 물음표는 여전히 남아 시인의 말처럼 ‘아침을 기다리는 오래된 문 앞에’ 서 있다. 그래도 침묵하지 않고 답을 갈구하는 우리의 용기가 세상을 바꾸고, 우리 자신도 성장시키지 않았나. 또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같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진실을 찾으려는 걸음은 멈출 수가 없다.
유난히 더운 올해 여름, 모든 꽃이 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정원에는 넝쿨들만 억척스럽게 자라고 있다. 그런데 넝쿨을 욕하며 걷어내다 보면 넝쿨이 뒤덮은 곳의 아래는 시원하고 촉촉해 그 속에서 수많은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우리의 억척스러운 질문이나 기도와 함께 찾아오는 눈물도 그러하지 않을까. 그 눈물이 우리를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위로하고 다시 나아갈 힘을 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얼마든지 오래 울어도 된다.
📝 박은희.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단원고 2학년3반 유예은님의 엄마
4.16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며 예은이가 노래를 좋아한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는 부족한 엄마,
기억이라면 그리스도인이 제일이라는 생각에 2015년부터 지금까지
4.16 예배와 기도회를 끈질기게 쉬지 않고 이어온 4.16예배팀의 한 사람.
📸사진 설명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사진1. 『얼마든지 오래 울 수 있다』 책표지
사진2. 2023년 6월 5일, 4.16생명안전공원예배 중 허성우 시인 발언 모습 (허성우 시인은 대전에서 태어나 젊은 날 페미니즘을 만나 여성운동활동가로, 그리고 여성학연구자로 살았다. 이화여대와 영국 서식스 대학(University of Sussex)에서 학위를 마친 후 성공회대학교 실천여성학전공 교수로 일하다가 사직, 귀향했다. 아들을 갑작스럽게 하늘로 떠나보낸 후 시를 통해 묻고, 고백하고, 애도하는 시간을 만났다. 현재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종신부제로서 세종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다.)
📚 이달의 책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이달의 책'은 재난참사피해자가 또 다른 재난참사피해자에게 건네는 책으로써의 위로이자, 읽고 쓰기를 혼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함으로써 상실 이후를 함께 나누는 장이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회복 불가능한 시간을 책으로 겪어내는 이들에게 이달의 책이 잠시라도 숨 쉴 구멍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