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고통의 곁, 곁의 고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재난피해자권리센터와 청강문화산업대학교의 특별한 만남에 부쳐
유해정(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재난피해자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려주는 웹툰이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미래의 창작자들이 재난피해자를 만난다면 어떤 가능성이 열릴까?
지난해 1월 4·16재단 부설기관으로 문을 연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엄기호 교수와의 만남은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큰 웹툰 분야에서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작가의 탄생을 바라는 간절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선구적 실험, <참사와 서사> 수업
2024년 1학기 청강대에서 정규수업으로 처음 개설된 이래, 올해 두 번째로 열린 <참사와 서사> 수업은 한국 사회에서 재난피해자와 창작자가 교실 안에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작품화하는 매우 창의적이고 선구적인 실험이었습니다.
지난해 4․16세월호참사, 가습기살균제 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피해자들에 이어, 올해는 10.29이태원참사, 2.18대구지하철화재참사, 6.9광주학동참사, 삼풍백화점붕괴참사, 오송참사 피해자들이 수업에 함께해주었습니다.
이 과정은 청년 작가들에게는 재난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했고, 재난피해자들에게는 20대 청년들과의 진솔한 만남을 통해 치유받고 힘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저희 같은 사람을 이렇게 초대해서 또 당시의 그 역사를 알려고 하는 것에 너무 감사합니다”라던 피해자의 말처럼,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피해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들이 살아온 삶의 길을 따라 걸어보려는 시도였습니다. 이 수업은 또한 피해자들의 곁을 만들고 세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통념과 전형을 뛰어넘는 만남
우리 사회는 종종 피해자를 향해 “얼마나 슬프십니까?”라며 묻고, “그 마음 다 안다”는 섣부른 위로를 건넵니다. “힘내세요”,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셔야죠.”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참사와 서사> 수업을 통해 만난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언론을 통해 전혀 만나지 못한, 통념과 전형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10.29이태원참사로 딸을 잃은 부모님이 딸의 버킷리스트였던 '명동성당에서의 결혼'을 대신 이루기 위해 세례를 받고 갱신결혼식을 올린 이야기, 2.18대구지하철화재참사로 부인과 딸을 잃은 유가족이 전해준 “덕분에 이 사회가 조금 더 안전해졌다”는 말이 삶의 가장 큰 위로라는 고백, “슬픔의 파도를 받아들이되, 나를 단단하게 하는 슬픔이 되게 하자”며 매일 다짐한다는 광주학동참사 유가족의 삶. 삼풍백화점붕괴참사로 딸을 잃었으나 뼈 한 조각 수습하지 못해 30년간 바람이 부는 날이면 위령탑을 청소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는 어머니. 침수된 오송지하차도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이후 손을 놓치는 꿈을 꾸곤 한다는 또래 대학생 생존자의 일상…
모든 이야기들이 고통의 곁에 자신을 놓아보는 시간이자, 곁의 고통을 상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서사의 창조
청년 작가들은 피해자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아파하고 울었습니다. 교감하고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경험과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서사를 창조했습니다.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서 슬픔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 삼킨 말을 돌려줄 사람을 잃었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 곁에 선 사람도 자신의 슬픔을 읽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죽은 이가 산 이를 구원하기도 한다는 이야기... 새로운 이이야기들이 탄생했습니다.
이는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침묵 속에 묻히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로 창작 형태로 계속해서 말해지고 들려지고 전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서, 사랑과 애도의 모양이 얼마나 다양하고 다채로운지를 파도치게 하고 픈 바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탄생한 창작물들이 전시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올해 전시가 10월 말 국회를 시작으로, 경기도청, 수원시 평생학습관, 창룡도서관, 이태원 피해자를 추모하는 <별들의 집>, 광주광역시청 등 다양한 곳에서 열리는 것은 단순한 장소의 순회가 아닙니다. 재난피해자의 권리와 회복이 정책적 차원에서, 지역사회 차원에서, 그리고 시민사회 차원에서 함께 논의되고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국회 생명안전포럼과 경기도, 수원시, 광주광역시, 재난참사피해자연대,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광주광역시청소년삶디자인센터가 함께 재난피해자의 치유와 권리 향상에 힘을 모았으면 하는 열망이기도 합니다.
전시회를 공동주최, 주관하는 단체들, 관람객들, 그리고 이 책을 여는 분들이 책에 담긴 작품들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 재난피해자들의 일상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이 여러분의 경험과 만나 또 다른 이야기로 새롭게 확장되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진정한 배움과 사회적 곁을 위해
앞으로도 사회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실험적이고 역동적인 만남이 교육의 현장에서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교육의 장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을 넘어, 사회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치유의 길을 모색하는 공동체가 될 때 비로소 진정한 배움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또한 시민의 공간이 재난피해자들에게도 활짝 열린 환대의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재난피해자들의 부서진 일상의 재건은 공동체의 태도에, 사회의 변화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수업을 함께 만들어주신 재난피해자분들과 70여명의 학생들, 각 분야 전문가분들께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합니다.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애써준 센터의 김서린 활동가, 예술감독 권은비님, 청강대 엄기호 교수님께도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나아갈 수 있는 건 기꺼이 곁이 되어준 당신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10월
김수연
걷기위해서김수연
김수연
빈 손김수연
무니
잊고 있던 것은무니
박서진
각자의 현재박서진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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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태
한 마디신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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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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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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